9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 믿음과 집요함이 만든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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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호’의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도전기는 물음표로 시작했으나 끝은 화려했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1월 27일(한국시간) 오전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국립경기장에서 끝난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사우디아라비아와 결승전에서 정태욱의 극적인 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한국은 정규시간 90분에 승부를 가리지 못했으나 연장 후반 정태욱(대구)의 극적인 헤더 결승골로 경기 승리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조별리그부터 파죽지세로 전승을 달리며 결승에 진출한 한국은 호주와 4강전에서 완벽한 경기력으로 2020 도쿄 올림픽 진출을 이미 확정했다. 결승에서 사우디를 상대로 고전했으나 결국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과 함께 AFC U-23 챔피언십 첫 우승을 거머쥐며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번 대회에서 김학범 감독의 선수들에 대한 믿음과 철저한 준비가 빛났다. 선수들의 능력을 신뢰했고, 그를 바탕으로 파격적인 로테이션을 가동할 수 있었다. 또한 적시에 조커 자원을 투입하는 판단력이 우승의 힘이었다.

불안한 시작, 파격 로테이션으로 극복

김학범 감독은 큰 폭의 변화를 시도했다. 단순히 전력 노출을 피하거나 체력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상대 맞춤 전술이자 선수들에 대한 믿음의 결과였다. 밀집 수비를 펼치는 상대에겐 조규성, 강하게 몸싸움을 시도하는 상대에겐 오세훈을 선발로 내세웠다.

한국의 이번 대회 시작은 불안했다. 중국과 조별리그 1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이동준(부산)의 극적인 결승골이 아니었다면 승리를 챙기지 못할 위기였다. 전반전 부상으로 교체 아웃된 중국의 에이스 장위닝(베이징 궈안)이 계속 뛰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는 누구도 몰랐다.

김학범 감독은 2차전에서 선발 출전 선수 7명을 바꾸는 파격적인 로테이션으로 축구 팬들을 놀라게 했다. 한국은 이란을 상대로 고전할 것이 예상됐으나 원두재(울산)와 맹성웅(안양)의 중원 장악과 이동준, 조규성(안양)의 득점으로 2-1로 승리했다.

특히 경기 선제골을 터뜨린 조규성과 거친 이란의 중원을 상대로 완벽한 장악력을 보여준 원두재의 활약이 빛났다.

경기 종료 후 하미드 에스틸리 이란 감독은 “한국을 잘 분석했지만 7명이나 교체할 줄은 몰랐다”라고 밝혔다. 분석을 철저히 하더라도 선발 명단의 반 이상을 바꾸는 결정은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었을 것.

2연승으로 토너먼트 진출을 조기에 확정한 한국은 3차전에서도 6명을 바꾸며 우즈베키스탄을 당황하게 했다. 오세훈(상주)의 멀티골에 힘입어 2-1로 승리한 한국은 대회 유일하게 3전 전승을 거두며 8강에 안착했다.

토너먼트 승부 가른 ‘조커 싸움’

토너먼트 들어서도 김학범표 로테이션은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조커 자원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요르단과 8강전에서 후반 교체 출전한 이동경(울산)은 극적인 프리킥 결승골로 2-1 승리를 이끌었다.

호주와 4강 경기는 한국의 압도적인 우세로 끝났다. 김학범 감독은 호주와 경기에서 완벽한 체력적인 우위를 점했다. 이동준과 이동경을 조커로 투입한 전략적인 선택으로 후반전 호주를 더욱 힘들게 했다.

김학범 감독은 호주전 이후 “이동준, 이동경을 교체로 쓴 것은 그 선수들의 역할이 승패를 바꾸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체력 고갈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로테이션을 가동한 호주와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막판 집중력에서 갈린 우승의 주인공

사우디와 결승전 승부는 김학범 감독의 예고대로 집중력에서 갈렸다. 김 감독은 지난 25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집중력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감독은 “오랜 기간 경기를 치르고 있고, 어느 팀 선수들이 집중력을 갖고 경기에 임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과 사우디 선수들 이미 5경기를 치르면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다. 양 팀 모두 수차례 득점 기회를 잡았으나 마무리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마지막에 웃은 것은 결국 한국이었다. 세트피스 찬스에서 한국은 정태욱의 극적인 헤더 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정태욱의 집중력과 간절함으로 만든 골이다. 정태욱은 경기 종료 후 인터뷰를 통해 “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연장전까지 생각했다”라며 “세트피스 득점은 갈망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치밀한 김학범의 준비

김학범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 감독 알렉스 퍼거슨에 빗대어 ‘학범슨’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카리스마가 강하단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은 생각보다 집요하고 치밀한 지도자였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김학범 감독이 가장 많은 신경을 쓴 것은 상대팀 분석이다. 대표팀 관계자에 따르면 김 감독은 분석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보며 경기를 준비한다. 그 때문에 대표팀의 이준석 비디오분석관이 매일 밤을 지새운다는 후문이다.

김학범 감독이 이토록 영상 분석에 집중하는 이유는 경기 데이터에서 볼 수 없는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AFC는 매경기 축구통계전문업체 ‘옵타’의 데이터를 제공했으나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

또 다른 대표팀 관계자는 “선수를 분석할 때 그 선수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발을 사용해, 어느 방향으로 드리블하는지는 통계에서 볼 수 없다. 그것은 비디오를 통해서 봐야한다”라고 말했다.

선수들 또한 비디오 분석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원두재는 “경기 때는 GPS 장비를 착용하지 않는다”라며 “경기 후에는 데이터보다는 영상을 본다. 위치 선정, 수비적인 역할을 잘 볼 수 있다”라고 답했다.

/글=이승우 기자 raul1649@osen.co.kr, 사진=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