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슈퍼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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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미팅의 최고 승자는 스캇 보라스.’ 지난해 12월 13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의 헤드라인이다. 윈터미팅 기간 자신의 선수 고객들에게 줄줄이 대형 계약을 안기며 시장을 주도한 ‘슈퍼 에이전트’ 보라스가 올 겨울 최고 승자로 떠올랐다. 류현진의 토론토 블루제이스 계약(4년 8000만 달러)까지 성사시키며 올 겨울 계약 총액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선수들의 천사, 구단들의 악마. 두 얼굴을 가진 보라스의 주가가 크게 치솟고 있다.

마이너리거에서 에이전트 변신

매년 겨울마다 뉴스의 중심에 서는 보라스는 야구 선수 출신이다. 1974~1977년 4년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에서 내야수로 뛰었다. 무릎 부상으로 메이저리그에는 오르지 못한 채 짧은 선수 생활을 마쳤다. 마이너리그 생활을 하며 선수 처우에 불합리를 느꼈고, 이는 선수 은퇴 후 에이전트로 변신하는 계기가 됐다.


대학 시절 공업약학을 전공하며 로스쿨을 졸업할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던 보라스는 1980년부터 에이전트 업무를 시작했다. 선수 시절 직접 느낀 선수 계약 관행의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주먹구구식 선수 평가 기준에서 탈피, 체계적인 분석 자료를 내세우며 협상의 기술을 보였다. 고교 및 대학 아마추어 선수들을 입도선매한 뒤 구단들에 거액의 계약금을 요구하며 시장 관행과 질서를 바꿨다.

보라스는 단순히 계약 협상만 하는 에이전트가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보라스 코퍼레이션’ 회사를 차려 선수들을 위한 지원 시스템을 마련했다. 선수 출신 스카우트와 MIT 출신 경제학자, NASA 출신 공학자가 각종 데이터와 자료를 분석한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전용훈련장 ‘BSTI(보라스 스포츠 트레이닝 인스티튜트)’에서 개인별 훈련, 식단 프로그램을 지원할뿐만 아니라 심리학자들을 불러 멘탈까지 철저하게 관리한다.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대박 계약의 중심, 코리안 리거까지

1983년 시애틀 매리너스 마무리투수 빌 코딜의 750만 달러 계약을 성사시키며 이름을 알린 보라스.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를 찾는 메이저리그 스타들도 많아졌다. 1998년 LA 다저스와 1억500만 달러에 계약한 투수 케빈 브라운은 최초의 1억 달러 선수가 됐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2001년 텍사스와 10년 2억5200만 달러, 역대 최장 및 최고액 계약으로 대박을 쳤다. 모두 보라스 작품이었다.

한국인 선수들과도 인연도 남다르다. 2002년 FA 자격을 얻은 ‘코리안특급’ 박찬호가 5년 총액 6500만 달러 대형 계약을 맺으며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할 때 보라스가 뒤에 있었다. 당시 투수 연봉 리그 전체 5위에 해당하는 고액 계약이었다. 그러나 박찬호는 텍사스에서 깊은 부진에 빠졌고, 2007년 다시 FA가 된 후 보라스와 결별했다. 보라스가 특급 선수들에게 치중하면서 뒷전으로 밀려난 박찬호로선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보라스는 2010년부터 추신수와 새롭게 인연을 맺었다. 추신수는 보라스의 진두지휘 아래 2014년 텍사스와 7년 총액 1억3000만 달러 FA 계약을 체결, 한국인 선수를 넘어 아시아 타자로는 최고액 기록을 썼다. 류현진도 2012년 12월 포스팅을 거쳐 LA 다저스에 입단할 때 보라스의 도움을 받았다. 협상 마감시한 30초를 남겨 놓고 6년 총액 3600만 달러 계약을 완료한 ‘끝장 전략’으로 화제를 모았다.

보라스의 완벽한 겨울, 류현진 또 대박
지난 몇 년간 메이저리그 FA 시장은 예년 같지 않았다. 구단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장기전 양상으로 흘렀다. 브라이스 하퍼가 2019년 3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13년 총액 3억3000만 달러로 역대 FA 최고액 계약을 했지만 보라스는 시장 흐름을 바꾸는 데 앞장섰다. 올 겨울 특급 고객들을 보유한 만큼 속도전으로 협상을 주도했고, 윈터미팅 때 연일 대형 계약 소식을 전했다.

지난 12월 10일 ‘월드시리즈 MVP’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워싱턴 내셔널스와 7년 2억4500만 달러로 역대 투수 최고액 계약을 했다. 이튿날에는 ‘최대어’ 게릿 콜이 뉴욕 양키스와 9년 총액 3억2400만 달러에 계약, 스트라스버그의 기록을 하루 만에 갈아치웠다. 그 다음날에는 강타자 앤서니 렌던이 LA 에인절스와 7년 2억4500만 달러에 사인했다. 윈터미팅에 앞서 신시내티 레즈와 4년 6400만 달러에 계약한 내야수 마이크 무스타커스까지 4명의 계약 규모만 8억7800만 달러에 달한다.

윈터미팅 후에는 사이영상 출신 투수 댈러스 카이클이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3년 보장 5550만 달러에 계약했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23일에는 기다렸던 류현진 계약도 성사시켰다. 토론토와 4년 총액 8000만 달러 계약을 이끌어낸 것이다. 연평균 2000만 달러는 한국인 선수 역대 최고액 기록. 류현진까지 대박을 터뜨린 보라스는 올 겨울 계약 총액 10억 달러(10억1650만 달러)를 돌파했다.

보라스의 에이전트 계약 수수료는 5%. 현재까지 총 5082만5000달러를 수수료로 챙겼다. 우리 돈으로 약 590억원 거액. 연평균 3600만 달러를 받는 콜보다 1년에 버는 돈이 더 많다. 웬만한 슈퍼스타 부럽지 않은 수입으로 ‘슈퍼 에이전트’ 위상을 높였다.

/글=이상학 기자 waw@osen.co.kr, 사진=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