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매직’의 실체를 찾아 하노이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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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축구에서 ‘쌀딩크’로 명성을 얻고 있는 박항서(60) 감독. 베트남축구협회는 지난 11월 5일 박항서 감독과 2년 재계약을 맺고 또 한 번의 신화를 꿈꾸고 있다. ‘박항서 매직’의 실체를 찾아 OSEN이 직접 하노이를 찾았다

치열했던 태국과 동남아 라이벌전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은 어떤 존재일까. 하노이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마치자마자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박항서 감독과 쯔엉이 출연한 한국은행의 대형광고판이 기자를 맞이했다. 공항 앞에는 박항서 감독의 김치광고가 새겨진 택시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택시기사가 대뜸 “박항서”를 외쳤다. 하노이 시내에서 박 감독의 얼굴이 새겨진 광고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박항서 감독은 그야말로 대통령같은 존재였다.

[OSEN=방콕(태국) 곽영래 기자] 2020 도쿄 올림픽 진출을 노렸던 베트남의 도전이 실패로 끝났다.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U-23 축구대표팀이 17일 오전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국립경기장에서 끝난 AFC U-23 챔피언십 조별리그 D조 마지막 경기에서 1-2로 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아쉬워하고 있다. /youngrae@osen.co.kr
태국과 베트남은 동남아축구 최고의 라이벌이다. 박항서 감독이 부임하기 전 베트남은 태국과 상대전적에서 3무 14패로 절대열세였다. 하지만 박 감독 부임 후 베트남은 태국에 1승 2무로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다. 태국에 대한 ‘열등감’을 씻어준 박 감독은 그야말로 베트남의 영웅이었다.

OSEN이 훈련장을 방문했을 때 박항서 감독은 태국전을 대비한 훈련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베트남 취재진은 베트남대표팀의 훈련을 25분간 지켜봤다. 박 감독은 특별히 한국 취재진에게 모든 훈련을 공개했다. 하지만 태국 기자들은 베트남대표팀 훈련 취재를 거절당했다. 지난 9월 방콕에서 베트남 기자들이 태국대표팀 취재를 거절당한 것에 대한 박항서 감독의 복수였다.

‘스파이 논란’을 의식한 태국대표팀은 베트남축구협회가 마련한 훈련장에서 훈련하지 않고, 하노이 외곽으로 한 시간 나가서 비밀리에 훈련을 진행했다. 박항서 감독이 지켜볼 수 없는 곳에서 철저한 보안을 지키겠다는 것. 박항서 감독을 잡기 위해 태국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니시노 아키라 감독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OSEN=김해공항, 최규한 기자] 베트남 남자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박항서 감독이 14일 오전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22세 이하 베트남축구대표팀은 ‘2019 동남아시안게임(SEA games)’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3-0으로 승리했다. 베트남은 60년 만에 사상 첫 우승을 달성했다. 승리의 순간을 만끽한 박항서 감독은 바로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U23 베트남대표팀은 내년 1월 태국에서 개최되는 U23 AFC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박 감독은 베트남대표팀을 이끌고 한국 통영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린다. 박항서 감독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마친 뒤 팬들과의 만남을 갖고 있다. /dreamer@osen.co.kr
10만명을 열광시킨 ‘박항서 매직’
기자는 11월 19일 태국전이 열리기 3시간 전 미딩국립경기장에 도착했다. 공안이 일대 교통을 통제하며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경기를 보러온 관중들 뿐 아니라 대표팀관련 물건을 파는 상인들, 거리응원에 나선 관중들까지 어림잡아 10만명이 경기장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박항서 감독의 얼굴과 태극기로 응원하는 관중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베트남은 물론 태국과 한국, 일본에서 온 취재진이 100명이 넘었다. ‘동남아 최고의 라이벌전’이란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경기내용도 거칠었다. 양팀은 격투기를 연상시키는 전투축구를 했다. 상대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은 예사였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축구를 연상케했다. 베트남은 선제골을 넣고도 골키퍼 차징이 선언돼 무효가 됐다. 후반전 넣은 베트남의 골도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베트남 골키퍼 당반람은 태국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등 수차례 기막힌 선방으로 팀을 구했다.

결국 베트남과 태국은 0-0으로 비겼다. G조 1위를 지킨 베트남(3승2무, 승점 11점)은 사상 첫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이 매우 유리해졌다. 베트남 팬들은 홈에서 태국을 맞아 패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무돼 박항서 감독의 이름을 연호했다.

경기 후 박항서 감독은 태국의 사사 베스나 토딕 골키퍼 코치와 실랑이를 벌였다. 토딕 코치가 박항서 감독에게 인종차별적인 제스처를 취했기 때문. 박 감독은 공식기자회견에서 “베트남을 위해 난 언제든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해 베트남 기자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외국인 감독이 자신들을 위해 싸우는 모습에 베트남 기자들까지 감동을 받은 모습이었다.

박항서 감독의 도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실 박항서 감독에게 ‘박수칠 때 떠나라’며 베트남축구협회와의 재계약을 만류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박 감독은 “내가 잘하는 것이 축구밖에 없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베트남은 내 축구인생에서 기회를 제공해준 나라다. 국민들에게 사랑도 받았다. 기대치가 높아 염려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부분을 두려워하면 모든 일을 할 수가 없다.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이제 박항서 감독은 U22 베트남대표팀을 이끌고 동남아시안게임 우승에 나선다. 지난 60년 동안 우승을 못했던 베트남축구는 박 감독에게 우승의 숙원을 맡겼다. 베트남 팬들에게 월드컵 진출보다 더욱 중요한 대회다. 박 감독은 “사실 부담도 많이 되지만 자신도 있다. 베트남축구를 한단계 도약시키고 싶다”며 큰 청사진을 그렸다.

/글=서정환 기자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