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축구에서 ‘쌀딩크’로 명성을 얻고 있는 박항서(60) 감독. 베트남축구협회는 지난 11월 5일 박항서 감독과 2년 재계약을 맺고 또 한 번의 신화를 꿈꾸고 있다. ‘박항서 매직’의 실체를 찾아 OSEN이 직접 하노이를 찾았다
치열했던 태국과 동남아 라이벌전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은 어떤 존재일까. 하노이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마치자마자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박항서 감독과 쯔엉이 출연한 한국은행의 대형광고판이 기자를 맞이했다. 공항 앞에는 박항서 감독의 김치광고가 새겨진 택시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택시기사가 대뜸 “박항서”를 외쳤다. 하노이 시내에서 박 감독의 얼굴이 새겨진 광고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박항서 감독은 그야말로 대통령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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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 훈련장을 방문했을 때 박항서 감독은 태국전을 대비한 훈련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베트남 취재진은 베트남대표팀의 훈련을 25분간 지켜봤다. 박 감독은 특별히 한국 취재진에게 모든 훈련을 공개했다. 하지만 태국 기자들은 베트남대표팀 훈련 취재를 거절당했다. 지난 9월 방콕에서 베트남 기자들이 태국대표팀 취재를 거절당한 것에 대한 박항서 감독의 복수였다.
‘스파이 논란’을 의식한 태국대표팀은 베트남축구협회가 마련한 훈련장에서 훈련하지 않고, 하노이 외곽으로 한 시간 나가서 비밀리에 훈련을 진행했다. 박항서 감독이 지켜볼 수 없는 곳에서 철저한 보안을 지키겠다는 것. 박항서 감독을 잡기 위해 태국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니시노 아키라 감독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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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물론 태국과 한국, 일본에서 온 취재진이 100명이 넘었다. ‘동남아 최고의 라이벌전’이란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경기내용도 거칠었다. 양팀은 격투기를 연상시키는 전투축구를 했다. 상대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은 예사였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축구를 연상케했다. 베트남은 선제골을 넣고도 골키퍼 차징이 선언돼 무효가 됐다. 후반전 넣은 베트남의 골도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베트남 골키퍼 당반람은 태국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등 수차례 기막힌 선방으로 팀을 구했다.
결국 베트남과 태국은 0-0으로 비겼다. G조 1위를 지킨 베트남(3승2무, 승점 11점)은 사상 첫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이 매우 유리해졌다. 베트남 팬들은 홈에서 태국을 맞아 패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무돼 박항서 감독의 이름을 연호했다.
경기 후 박항서 감독은 태국의 사사 베스나 토딕 골키퍼 코치와 실랑이를 벌였다. 토딕 코치가 박항서 감독에게 인종차별적인 제스처를 취했기 때문. 박 감독은 공식기자회견에서 “베트남을 위해 난 언제든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해 베트남 기자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외국인 감독이 자신들을 위해 싸우는 모습에 베트남 기자들까지 감동을 받은 모습이었다.
박항서 감독의 도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실 박항서 감독에게 ‘박수칠 때 떠나라’며 베트남축구협회와의 재계약을 만류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박 감독은 “내가 잘하는 것이 축구밖에 없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베트남은 내 축구인생에서 기회를 제공해준 나라다. 국민들에게 사랑도 받았다. 기대치가 높아 염려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부분을 두려워하면 모든 일을 할 수가 없다.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이제 박항서 감독은 U22 베트남대표팀을 이끌고 동남아시안게임 우승에 나선다. 지난 60년 동안 우승을 못했던 베트남축구는 박 감독에게 우승의 숙원을 맡겼다. 베트남 팬들에게 월드컵 진출보다 더욱 중요한 대회다. 박 감독은 “사실 부담도 많이 되지만 자신도 있다. 베트남축구를 한단계 도약시키고 싶다”며 큰 청사진을 그렸다.
/글=서정환 기자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