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잘 막고, 잘 쳐야’ 한다. 특히 잘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 어느 순간 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안타가 적어도 점수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야구다. 많은 팬이 필요한 순간 쳐주는 타자 ‘해결사’에 열광하는 이유다. 2019년 KBO리그 프로야구의 해결사는 오재일이었다.
“일단 찾아갔어요”
오재일이 야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리틀야구단 모집 공고를 본 ‘꼬마’ 오재일은 그 길로 리틀야구단 입단을 신청했다. 허락은 뒷일이었다. 다행히 부모님도 찬성이었다. “아버지께서 유치원 때 아들이 크면 야구를 시킨다고 하셨는데 잘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2019년 한국시리즈 MVP의 야구 인생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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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간판 1루수 탄생. 터닝포인트는 두산”
‘미완의 대기’로 있던 오재일에게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2012년 7월 이성열과 트레이드로 두산으로 이적했다. 당시만해도 오재일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트레이드 상대인 이성열은 2010년 24홈런을 때려내며 증명된 선수였다. 반면 오재일은 2011년까지 통산 홈런이 2개에 불과했다.
트레이드 첫 해 8개의 홈런을 때려냈지만, 여전히 기대를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던 중 다시 한 번 전환점이 찾아왔다. 2015년 김태형 감독의 부임과 함께 기회를 받기 시작하며 오재일은 본격적으로 ‘거포’로서 날개짓을 시작했다. 첫 두자릿수 홈런(14개)를 친 해였다.
2016년 두산은 외국인 선수로 닉 에반스를 영입했다. 김태형 감독은 “에반스와 오재일을 1루수로 기용할 예정”이라며 시즌 구상을 내비쳤다. 오재일은 주눅들지 않았다. 호주 시드니에서 진행된 1차 스프링캠프에서 오재일은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경쟁, 이길 수 있습니다.” 허세가 아니었다. 타율 3할1푼6리, 27홈런을 때려내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이후 탄탄대로였다. 올시즌까지 꾸준히 두 자릿수 홈런을 날렸다. 4년 간 101개의 아치를 그렸다.
오재일도 당시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그전에 더 어렸을 때부터 1루수에 경쟁자가 있었다. 프로니까 매년 경쟁을 하는데, 신경을 쓰면 더 안되더라. 상대가 외국인이든 어떤 선수든 신경 안 쓰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잘하면 충분히 경기에 뛸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오재일의 마음이었다. 아울러 오재일은 “두산으로 오게 된 것이 행운이었다. 내게는 큰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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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한국시리즈 4차전. 3승을 선점한 두산은 3-8로 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고 9-8로 9회말을 맞았다. 그러나 9회말 2사 만루에서 3루수 허경민의 수비 실책이 나왔고, 결국 승부는 연장으로 향했다.
흐름이 키움에 넘어 갈 수 있는 상황. 선두타자로 나선 오재원이 2루타를 치며 분위기를 바꿨다. 희생번트와 삼진. 2사 3루, 해결사가 나왔다. 타석에 들어선 오재일은 초구를 공략해 우익 선상으로 빠지는 2루타를 때려내 재역전을 만들어냈다. 이후 김재환의 적시타로 오재일도 홈을 밟았고 두산은 10회말 실점없이 경기를 끝냈다. 두산의 6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MVP는 오재일의 몫이었다.
오재일은 마지막 10회 상황에 대해 “내가 치면 MVP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생각하고 다시 타석에 집중했다. 안타를 치고 나서는 MVP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사실 한국시리즈 MVP는 오재일이 아닐 뻔 했다. 박세혁은 4경기에서 타율 4할1푼7리 4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그러나 연장 오재일에게 표심이 돌아갔다. 1차전 끝내기 홈런을 때렸던 만큼, 오재일 역시 자격이 충분했다.
오재일에게는 허경민의 실책이 MVP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이었다. 그러나 오재일은 “사실 9회에 끝나야 가장 좋은 그림이었다. 결과로 내가 MVP를 받았지만, 그 당시의 (허)경민이의 마음도 잘 것 같았다”고 실책으로 상처 받았을 동료를 먼저 걱정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 끝내기 홈런. 우승을 이끈 결승타.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오재일은 “나중에 팬들이 야구를 볼 때 중요한 순간이나 찬스를 맞이하면 나란 사람을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중요한 순간 한 방 쳐줬던 선수, 혹은 지금 야구를 보는 어린 팬들이 커서 아이들과 야구를 본다면 그 때 ‘찬스 하면 오재일이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오재일의 바람이었다.
“내성적? 바뀌고 있어요.”
오재일은 이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실시한 미디어데이에 대표선수로 나왔다. 평소 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던 만큼, 걱정의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김태형 감독은 “선수들과 있을 때에는 또 다르다”고 이야기 했다. 오재일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밀리지 않는 말주변을 보였다.
‘반전’은 한국시리즈 우승 후 세리머니에서 오재일은 마이크를 들고 관중석에 있는 팬들에게 ‘세이 호~’라는 말로 호응을 유도했다. 오재일은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다. 그래도 두산에 와서 많이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만약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안 했다면 오재일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오재일은 “몸 쓰는 일은 안 했을 것 같다. 몸보다는 머리 쓰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학교 다닐 때에도 같이 운동하던 친구보다는 성적이 좋았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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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역시 오재일에게 고마운 존재다. 오재일은 “시즌 때 혼자 아이를 보느라 힘들 것이다. 야구를 잘하는 것이 선물이니 앞으로 꾸준히 잘하도록 하겠다. 정말 고맙다”고 강조했다.
평소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은 비시즌에 채운다. 오재일에게 취미를 묻자 ‘아이랑 놀아주기’라고 했다. 오재일은 “평소에 아이랑 놀아주지 못하니 비시즌 때 많이 놀아주려고 한다. 이제 4살인데 말을 시작했다. 말 못할 때에는 안아주기만 했는데, 이제는 서로 이야기하니 더 재미있다”고 아빠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고마운 사람은 김태형 감독. 오재일은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셨고, 또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라며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중요한 2020년. 과제는 마음 비우기”
그동안 오재일을 향해서 ‘슬로스타터’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녔다. 4월 한 달 타율이 2할이 채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이상의 타격을 보여줬고, 시즌 말미에는 3할 언저리 타율에 20홈런은 채워져 있었다.
다소 늦은 출발이 의식될 법도 했지만 오재일은 ‘마음 비우기’에 나섰다. “(슬로스타터라는 것을) 의식하면 오히려 더 안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부담으로 오는 것 같다”라며 “시즌 시작할 때 올해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안타를 치려다보니 오히려 더 안되는 것 같다. 반면 후반에는 타율 등을 신경쓰지 않다보니 잘되는 것 같다. 쉽지 않겠지만 더 마음을 비우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오재일은 내년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FA) 신분이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1년이 될 예정. 오재일은 “크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래도 또 잘해야 한다 신경을 쓰면 안될 것 같다. 작년에 느낌이 괜찮았으니 똑같이 준비하면 될 것 같다. 의식하지 않고 매년 하던대로 하겠다”고 담담하게 2020년을 기다렸다.
/글=이종서 기자 bellstop@osen.co.kr, 사진=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