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감독의 1년 “시대에 따르는 감독 되고 싶다”
10위-10위-10위-9위. KT가 지난 4년 간 받아든 성적표다. ‘막내 구단’으로 2015년 1군에 야심 차게 합류했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약체’로 꼽혔던 KT는 2019년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인 변신을 선언했다. 창단 멤버였던 이숭용 코치를 단장으로 선임하며 프런트에 현장색을 입혔다. 그리고 조범현 감독, 김진욱 감독에 이어 이강철 감독을 제3대 감독으로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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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선수 시절을 보냈던 가운데 지도자 경력도 풍부하다. 2005년 은퇴한 뒤 KIA 2군 투수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강철 감독은 KIA 1군 투수코치-넥센 히어로즈 수석코치를 거쳐 두산 베어스 2군 감독과 수석코치를 역임했다.
‘강팀 DNA’를 이식하기에 최적의 길을 걸어왔다. 선수와 지도자를 역임하면서 총 9차례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고, 우승 반지는 6개나 끼었다. 이강철 감독은 부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 “절반의 성공” KT, 강팀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강철 감독과 함께 한 첫 시즌. KT는 조금씩 달라졌다. 만년 하위권이라는 딱지를 떼고 ‘형님 팀’과 대등하게 싸웠다. 창단 첫 5할 승률을 기록하며 이제는 누구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팀이 됐다. 정규시즌 우승팀 두산과는 9승 7패로 상대 전적에서 앞섰다. 가시적인 성과가 분명 했지만 이강철 감독은 “절반의 성공을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출발은 쉽지 않았다. 시범경기에서 1무 5패에 그쳤고, 정규시즌에서도 개막 후 5연패에 빠졌다. ‘KT는 올해도 안 되는구나’라는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이강철 감독은 “시범경기에서 연패에 빠지고, 시즌 초반에도 어려움을 겪다 보니까 선수들도 많이 동요됐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초보 감독에게 찾아온 첫 위기. 그러나 이강철 감독은 노련했다. 해법은 ‘믿음’이었다. 사령탑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먼저 중심을 잡았다.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강해질 KT를 바라보며 선수들이 초반 역경을 스스로 헤쳐나가길 기다렸다. 이강철 감독은 “투수 만들기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선발진 맞추기에 힘을 썼는데, 타선이 작년에 50%의 힘도 못 냈다. 타선은 작년을 믿고 투수만 만들면 되겠구나 했는데 그게 안 되니 조금 힘들었다”고 되돌아봤다.
기다림은 빛을 봤다. 이강철 감독은 “투수진이 안정되고 타선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경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또 기동력 야구가 되면서 작전을 더했다. 선수 개개인이 아닌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모아 하나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빠른 선수들은 뛰고 중장거리 선수들은 치면서 팀이 정상적으로 올라왔다. 그러면서 상대에게 어려운 팀이 된 것 같다”라며 “결국에는 끝까지 기다렸던 것이 중간부터는 효과를 봤다. 어차피 올 시즌뿐 아니라 내년, 그리고 내후년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지금의 선수들이 해줘야 했다. 그렇게 계속 기회를 준 것이 반등 요인이 된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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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가 강해지는 동안 이강철 감독은 하루에도 수십,수백번 속을 태웠다. 시즌 전 수 많은 플랜을 세웠지만, 매일 변수가 발생하는 야구인 만큼 이강철 감독도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이강철 감독은 “초반에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많은 공부를 했다”라며 “-15의 승패마진에서 5할 승률까지 가게 되면서 어려울 때 경기를 풀어가는 법, 또 좋았을 때 유지하는 방법 등 여러가지를 배웠다. 한 시즌을 잘 치러준 선수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한 시즌을 치르면서 많은 교훈을 얻은 만큼, 이강철 감독도 내년 시즌 마음가짐을 새롭게 먹었다. “나름의 준비를 했지만, 시행착오도 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운을 뗀 그는 “내년에는 좀 더 독하게 해야할 것 같다. 팀을 위해 결단을 내릴 시점에는 확실히 내려야 한다는 것이 내년 시즌 감독으로서 마음가짐일 것 같다”고 다짐했다.
▲ “높은 마운드와 끈끈함” 2020년 KT에 입혀질 색깔
이숭용 KT 단장은 이강철 감독 선임 당시 “투수 육성과 관리에 있어서는 KBO리그 최고”라며 투수진 성장을 기대했다. 이강철 감독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이강철 감독의 가장 큰 고민거리도 투수였다.
성적도 중요했지만, 앞으로 KT를 이끌 선수를 발굴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그 결과 배제성이라는 KT 창단 첫 10승 토종 투수가 탄생했고, 주권은 25홀드 2점 대 평균자책점을 거두며 허리를 든든하게 지켰다. 이 밖에 김민수, 손동현 등은 내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강철 감독은 “투수의 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리 팀도 투수의 팀이 조금씩 되는 것 같다. 중간과 마무리가 생기고, 선발 야구도 조금씩 되고 있다”라며 “투수가 갖춰진 상황에서 기동력과 디테일이 더해져야 한다. 최근 공인구가 바뀌면서 장타력 있는 팀은 살아남기가 쉽지 않게 됐다. 또 우리 팀에는 장거리 타자가 없다. 발 빠른 젊은선수들이 뛰고, 중장거리 타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베테랑 선수이 해결해준다면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
이강철 감독은 “올해는 과정에 있었다. 포스트시즌에 올라갔더라면 좋았겠지만, 현재의 선수층을 봤을 때에는 정말 잘해줬다. 이를 계기로 내년에 자리를 잡고, 지금과 같은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라며 “올 시즌 포스트시즌과 비슷한 경기를 많이 했다. 시즌 막바지 삼성, NC전 같은 경기는 포스트시즌 못지 않은 긴장감과 중요도가 있던 경기였다. 경험이 함께 더해지면서 내년에는 더 강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 “시대를 따르는 감독” 이강철이 그리는 ‘감독 이강철’
“올해 저는 어떤 감독이었나요?” 이강철 감독에게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 지에 대해 묻자 되돌아온 질문이었다. 이강철 감독은 “낡지 않고, 시대를 따를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 10년이 지나 감독을 계속 하더라도 그 시대에 맞는 운영을 하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감독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해태 왕조’를 이끈 주축 투수이며, KBO리그의 한 획을 그은 대투수였다. 코치로도 성공했다. 경력을 봤을 때, 이강철 감독에게는 ‘네가 얼마나 야구를 해봤냐’ 혹은 ‘네가 얼마나 알고 있냐’라는 고집이 생기기에는 충분했다.
이강철 감독은 ‘자신의 색깔’을 지웠다. 그리고 ‘팀에 맞는 색’을 찾아 스스로 입었다. “카리스마라는 것은 단순히 강하게 억누른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 역할을 잘하고, 얼마나 실수를 하지 않는 지에 따라서 권위가 나온다”라며 “외국인 감독 못지 않은 오픈 마인드로 선수단과 소통하겠다. 틀에 박힌 야구가 아닌 선수단과 소통을 하면서 그 팀에 맞는 야구를 하고 싶다. 어떤 팀에 가더라도 같은 색이 아닌 그 팀이 가지고 있고 잘할 수 있는 야구를 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글=이종서 기자 bellstop@osen.co.kr
/사진=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이강철 감독이 뽑은 MVP는?
“누구 하나를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이강철 감독과의 첫 해를 빛낸 KT 위즈의 ‘최고 선수’는 누구일까. 이강철 감독은 “시기마다 잘해준 선수가 있다”며 선수 한 명 한 명을 떠올렸다. “초반에 힘들 때에는 강민국이 와서 수비 안정에 도움을 줬고, 이후에는 심우준이 잘해줬다. 또 주장 유한준은 키포인트로 4번타자 역할을 잘해줬다. 강백호는 초반에 타선에서 제 몫을 다했고, 강백호 부상 때에는 조용호, 김민혁이 다 잘했다. 또 올스타전 직전에는 오태곤이 매섭게 쳤다. 김재윤이 빠졌을 때는 정성곤이 해줬고, 그 다음에는 이대은이 뒷문 단속을 해줬다. 손동현, 전유수, 김민수 모두 필요한 시기마다 제 역할을 해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선수단 모두가 올 시즌 KT의 ‘마법’에 힘을 보탰던 만큼 이강철 감독은 누구 한 명을 꼽기를 어려워했다. 고민 끝에 이강철 감독은 마음 속 한 명을 정했다.
“일년내내 흔들리지 않은 주권이 정말 고생했다. 한 시즌 동안 쉬지지 않고 투수진의 중심을 잡아줬다. 25홀드라는 기록에 나타나듯 올 시즌 주권이 정말 큰 역할을 해줬다. 굳이 꼽는다면 고생한 주권이 MVP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