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미래 이강인(18, 발렌시아)이 드디어 성인대표팀 무대에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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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은 지난 9월 5일(이하 한국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유럽의 복병 조지아와 친선경기에서 축구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3-5-2 포메이션의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이강인을 낙점했다.

이강인의 A매치 데뷔는 대표팀의 9월 원정 2연전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지난 6월 끝난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며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그 공을 인정받아 대회 최우수선수상(골든볼)을 받았다.

벤투 감독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이강인을 깜짝 선발로 내세웠다. 만 18세 198일의 나이로 A매치에 데뷔했다. 이는 한국 축구대표팀 사상 7번째로 어린 나이에 A매치 출전 기록이다. 이 부문 최연소 기록은 1983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4강 신화의 주인공 김판근의 17세 241일이다.

[OSEN=최규한 기자] 이강인. /dreamer@osen.co.kr
확실한 눈도장

이강인은 조지아를 상대로 인상적인 데뷔 경기를 치렀다. 전반 15분 중원에서 강한 압박을 이겨낸 후 날카로운 패스를 연결했다. 전반 38분 중앙에서 공을 잡은 이강인은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조지아 골문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강인은 후반엔 A매치 데뷔골 기회까지 잡았다. 후반 6분 만에 얻은 프리킥을 직접 왼발로 처리하며 킥 감각을 과시했다. 이강인의 발을 떠난 공은 상대 골대를 강타하면서 조지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조지아의 골키퍼는 슈팅의 몸을 던지지도 못할 정도로 예리한 코스였다.

이강인의 조지아전 선발 출전은 다소 이례적이었다. 벤투 감독은 성인 무대에서 확실히 검증된 선수에게조차 쉽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평소에도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라고 할 정도로 경기 출장 횟수, 공격 포인트보다는 전술적 철학에 맞는 선수를 선호한다. 훈련 과정을 꾸준히 지켜보면서 스스로 세운 확실한 기준에 부합하는 선수를 기용한다.

백승호(22, 다름슈타트)의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백승호는 지난 6월 서울서 치러진 이란과 평가전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소속팀인 페랄라다-지로나(지로나 2군)는 4부리그 강등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백승호를 대상으로 개인교습을 할 정도로 다른 대우를 받아 깜짝 데뷔전을 치렀다.

이강인 또한 벤투 감독의 기준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 조지아전 선발 명단에 포함됐다. 후반 26분 김보경(30, 울산 현대)와 교체되며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71분 동안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활약은 ‘국가대표’ 이강인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했다.

분명한 보완점, ‘수비 가담-강약 조절’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이강인은 보완할 부분도 뚜렷했다. 성인 무대에서 겪어야 할 압박을 얼마나 잘 이겨내는지가 관건이다. 조지아와 경기에서 이강인이 번뜩이는 활약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팀의 경기력 면에선 아쉬웠다.

이강인은 체격 조건이 좋은 조지아 중원을 상대로 힘에서 밀리는 장면이 몇 차례 있었다. 전반에만 상대 미드필더들과 몸싸움을 펼친 후 그라운드에 주저앉는 장면이 수차례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화려한 기술로 상대 압박에서 벗어나는 능력이 있지만 피지컬에서도 밀리지 않아야 한다.

이강인은 수비 가담에서도 다소 아쉬웠다. 3-5-2 포메이션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 권창훈(25, 프라이부르크)과 호흡을 맞춘 이강인은 역습 허용 시에 수비로 내려가는 적극성이 부족했다. 오직 백승호만이 3백 수비라인을 보호하는 상황에서 중앙 미드필더의 수비 가담은 필수적이다.

이강인은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강도 조절에 힘써야 한다. 전방으로 날카로운 패스 연결을 시도했다. 예리한 코스로 상대 수비를 꿰뚫을 수 있었지만 강도가 정확하지 않았다. 경기 속도가 연령별 대표팀보다 훨씬 빠른 성인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 킥의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을 더욱 가다듬어야 한다.

진정한 과제…프로 무대 활약

완벽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이강인에게 진정한 과제는 소속팀에서 출전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벤투 감독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을 떠나 이강인이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해선 프로 무대에서 제대로 부딪히고 이겨내야 한다.

이강인이 대표팀에 차출된 사이 소속팀인 발렌시아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 9월 12일 발렌시아는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감독(54)을 경질한 사실을 발표했다. 이어 2시간 만에 알베르트 셀라데스 감독(44) 선임 사실을 밝혔다.

발렌시아는 3년 연속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진출을 이끈 토랄 감독을 경질하며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2019-2020 프리메라리가 초반 3경기에서 1승 1무 1패로 경질에 이를 정도로 나쁜 성적도 아니었다. 게다가 바르셀로나를 꺾고 2018-2019 코파 델레이에서 우승까지 차지했기에 피터 림 구단주에 대한 팬들의 원성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강인으로서는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토랄 전 감독은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역습 위주의 직선적 전술을 구사했다. 내용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춘 전략 탓에 유망주 선수들을 기용하는 데 다소 인색한 측면이 있다.

반면 셀라데스 감독은 스페인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치면서 유망주를 발굴하고 기용하는 데에 망설임이 덜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전술적으로도 패스와 점유를 우선으로 하고 있어 이강인이 활약할 수 있는 여지가 더욱 커졌다. 그 때문에 이강인의 더 많은 리그 출전을 원하는 국내 팬들의 기대가 높아졌다.

팬들의 기대처럼 이강인은 토랄 감독 체제 때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있다. 최근 치른 발렌시아의 공식 경기에서 4경기 연속으로 교체 출전했다.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첼시와 UCL 조별리그 1차전에 출전하며 꿈에 무대에 데뷔했다. 레가네스와 리그 5라운드에선 후반 14분 막시 고메스(23) 대신 그라운드를 밟아 이번 시즌 가장 긴 31분을 소화했다.

한국에선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같은 나이지만 이강인은 어엿한 프로 선수다. 여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하다. 이강인이 큰 기대를 받고 있는 만큼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내고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글=이승우 기자 raul164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