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대전 아이돌’ 정은원의 꿈, “최종 목표는 한화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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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힘겨운 시즌을 보내고 있는 한화 이글스. 어둠 속에도 빛이 있다. 2년차 내야수 정은원(19)의 폭풍 성장이 한화 팬들의 큰 위안이자 희망이다. 곱상한 외모와 똑부러진 실력 그리고 조리 있는 말솜씨까지, 여심을 사로잡고 있는 ‘대전 아이돌’ 정은원을 만났다.

베이징 키즈, 2000년생 선두주자

2000년 1월17일생 정은원은 지난해 KBO리그 최초로 1군 경기에 등장한 ‘밀레니엄 베이비’로 주목 받았다. 특히 그해 5월8일 고척돔 경기에서 파이어볼러 조상우(키움)에게 9회 동점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프로 데뷔 첫 안타를 극적으로 장식했다. 2000년생 선두주자로 리그에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알렸다.


정은원의 야구 시작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으로 이른바 ‘베이징 키즈’ 세대. 어릴 적부터 친구들과 야구를 하거나 보는 것을 좋아했고, 야구대표팀의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을 계기로 야구 선수를 꿈꿨다.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 유전자를 물려 받았다. 아버지 정범상씨도 고교 때까지 선수로 뛰었다. 정은원은 “아버지가 기술적인 것보다 멘탈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을 고교 시절까지 많이 해주셨다. 경기 전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 경기 후에 떨쳐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내야수지만 초등학교 시절에는 투수도 겸했다. 스스로 ‘기교파’라고 표현했다. “언더핸드로 던지다 사이드로도 던지기도 했다. 팔 각도를 많이 바꿔가며 던진 기억이 난다”며 웃은 정은원은 “초등학교 때 나름 통했던 것 같다. 투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미련은 없다”고 돌아봤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마무리를 이끈 SK의 잠수함 투수 정대현을 좋아했고, 따라했다. 인천 출신답게 어릴 때는 연고팀 SK를 응원했다. SK를 많이 좋아했고, 경기를 보며 응원했지만 중학교 입학 후로는 특별한 기억이 없다고. 그렇게 인천에서 무럭무럭 자란 정은원의 인생 항로는 대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될성 부를 떡잎, ‘포근이’ 탄생

인천고에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수비력과 야구 센스를 인정받은 정은원은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 전체 24순위로 상위 지명됐다. 당시 이정훈 한화 스카우트 팀장은 “정은원이 경기하는 것을 보면 홀딱 반한다. 포스트 정근우”라며 “무조건 될 선수”라고 호언 장담했다.

2018년 1월 신인 선수 캠프 때 정은원을 본 박종훈 한화 단장도 “수비만 놓고 보면 당장 1군급이다. 머지않아 우리 팀의 스타가 될 것이다”고 자신했다. 될성 부를 떡잎으로 가능성을 높이 평가 받았고, 고졸 신인임에도 이례적으로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프로 입단 후 키가 2cm 자랐고, 체격도 더 커졌다. 힘이 붙으면서 타격도 빠르게 향상됐다. 어릴 적부터 롤 모델로 삼은 2루수 정근우가 수비 불안으로 포지션을 옮긴 사이 정은원이 그 자리를 꿰찼다. 정근우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활약했고, 새로운 한화 주전 2루수의 탄생을 알렸다.

이쯤 정은원에겐 ‘포근이’라는 귀여운 별명이 붙었다. 방송 인터뷰에서 “포근한 느낌을 주는 수비를 하고 싶다”는 말이 화제가 된 것이다. 여기에 ‘포스트 (정)근우’의 줄임말이라는 해석이 붙으며 의미가 더해졌다. 정은원도 “국가대표 2루수 출신인 정근우 선배님의 뒤를 잇는 선수라는 뜻도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정이 가는 별명이다”고 만족했다. 정은원이 등장하면서 정근우도 2루 터전에서 미련 없이 내려와 1루수와 외야수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첫 풀타임 시즌, 수비 이닝 1위

2년차가 된 올해는 개막전부터 주전 2루수를 맡아 풀타임 시즌을 보내고 있다. 6월까지는 3할대 타율과 뛰어난 선구안을 발휘하며 한화의 1번 리드오프로 자리 잡았다. 한용덕 한화 감독은 “이대로라면 국가대표로 손색 없다”며 2020년 도쿄올림픽에도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고 치켜세웠다.

타격과 수비뿐만 아니라 주루까지 좋아졌다. 발이 그렇게 빠른 스타일이 아니지만 올해 도루 14개에 성공했다. 정은원은 “스피드는 고교 시절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주력보다 타이밍을 뺏어 도루하는 스타일이다. 작전코치님과 주루코치님께 많은 조언을 받은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만큼 야구 센스가 좋다.

그러나 무더위가 시작된 7월부터 타격 상승세가 꺾였다. 전체 야수를 통틀어 가장 많은 1165⅓이닝(9월 26일 현재) 동안 수비하며 체력적으로 지친 영향이 없지 않았다. 전천후 내야 백업 강경학이 부상으로 6월에야 1군에 올라오면서 정은원을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었다. 한화의 정은원 의존도가 높았고, 풀타임 첫 해 과중한 업무량을 소화했다.

정은원은 “체력 관리를 비롯해 어떻게 한 시즌을 헤쳐나가야 할지 배운 시즌이다. 스스로 관리를 잘하면서 시즌 초반 좋았던 모습을 끝까지 보여줘야 한다”며 “좋은 모습이 나올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내년에는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정은원 스스로는 아쉬움이 많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선배들은 그저 대견하다. 정근우는 “어린 나이에는 기록을 많이 신경 쓴다. 기록이 떨어지는 만큼 자신감까지 떨어질 수도 있지만 은원이는 올해 충분히 잘했다. 내년을 생각하면 더 잘할 선수다. 떨어진 기록을 생각하지 않고 시즌 마무리를 잘하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대전 아이돌, 유니폼 판매 1위

올해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비롯해 한화 경기가 열리는 곳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유니폼은 43번, 정은원의 것이다. 입단 첫 해였던 지난해 정은원의 유니폼은 약 700장 팔렸는데 올해는 3.3배 상승한 2500장가량 판매됐다. 팀 내 유니폼 판매 순위가 9위에서 1위로 수직 상승했다. 한화 최고 스타 김태균의 판매량을 뛰어넘었다. 정은원은 “제 유니폼을 입고 응원해주는 팬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팬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말뿐만 아니라 실제 팬서비스에서도 누구보다 열심이다. 경기 전후로 팬들에게 최대한 많은 사인을 해주며 사진 촬영도 한다. 실력과 외모 뿐만이 아니라 하는 행동까지 팬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팬분들이 계시기에 프로 선수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님께서도 팬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잘 간직하고 팬서비스도 잘해드려야 한다고 말씀해주시곤 한다”는 것이 정은원의 말이다.

등번호 43번도 어느새 정은원의 상징처럼 굳어지고 있다. 정은원은 “처음 프로에 와서 선택권이 없었고, 구단으로부터 배정받은 번호가 43번이다”고 밝혔다. 대부분 신인들처럼 자신이 선택한 번호는 아니다. 그래서 저연차 선수들이 주전급으로 자리 잡은 뒤 등번호를 바꾸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은원은 “프로 와서 처음 쓴 번호이고, 작년 좋은 결과가 나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내게 좋은 기운을 가져다 주는 번호 같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한화 팬들은 유니폼 번호 변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국가대표, 한화 우승을 꿈꾸다
한창 타격감이 뜨거웠던 5~6월 정은원은 국가대표를 꿈꿨다. 지난 9월3일 발표된 프리미어12 야구대표팀 예비 엔트리 60인에도 포함됐다. 하지만 정은원은 후반기 부진으로 욕심을 내려놨다. 그는 “지금 같은 모습이라면 국가대표 가능성은 0%, 아니 아예 마이너스”라고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봤다.

팀 선배들은 시즌 전 정은원에 대해 “스트레스 안 받는 성격 같다”며 부러워했지만 2년차 시즌 많은 관심 속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느끼는 것이 많다.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순 없는 것 같다. 야구가 안 될 때는 속상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생긴다. 그럴 때 빨리 잘 풀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정은원의 다짐이다.

매년 한 단계 더 발전을 꿈꾸는 정은원의 최종 목표는 한화 우승이다. 한화는 지난 1999년을 끝으로 20년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년 암흑기를 깨고 가을야구를 했지만 1년 만에 9위로 추락하며 다시 하위권으로 내려앉았다. 당장은 쉽게 이뤄지지 않겠지만 먼 미래 한화 우승의 꿈을 그리고 있다.

정은원은 “앞으로 야구 선수로서 꿈과 최종 목표라면 한화 이글스 우승을 경험하는 것이다. 작년에 처음 한화와 와서 가을야구를 경험했는데 정규시즌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단기전에서 선수들의 높은 집중력, 팬분들의 관심과 열정 등 경기장에서 느끼는 가을야구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하나하나 단계별로 목표를 성취하며 최종 우승까지 간다면 큰 보람이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지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한화 우승, 이 꿈이 이뤄진다면 그 중심에 분명 정은원이 있을 것이다.

/글=이상학 기자 waw@osen.co.kr, 사진=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