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고교야구 전국 최강을 자랑하는 수원 유신고 야구부 숙소에 걸려있는 표어이다. 야구에 관한한 엄하기로 정평이 난 이성렬(64) 감독의 지도관을 엿볼 수 있는 구호이다. ‘야구를 왜 하는가’, ‘유신고 야구부는 한 팀(one team)이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감독은 ‘그라운드에서는 냉철한 승부사이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이 주변 지인들의 한결 같은 대답이다. 고교야구 최고령 지도자이기도 한 이감독은 유신고에서만 무려 26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 올 시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에 이어 청룡기까지 거머쥐며 지도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이성렬 감독을 만나보았다.
“투수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선수들이 똘똘 뭉쳐서 경기를 하고 있지만 쉽지 않네요”.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2019봉황대기 고교야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8월 20일 서창기(54) 순천효천고 감독은 1, 2회전을 승리로 통과한 기쁨보다는 앞으로 남은 경기에 걱정이 더 컸다. 서 감독의 우려는 8월 21일 3회전인 서울 성남고와의 경기에서 현실이 됐다.
서 감독과 효천고는 에이스인 투수 김진섭이 2109세계청소년대회 국가대표로 빠져나가면서 마운드 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서 감독은 이날 경기 초반인 3회부터 선발 투수를 내리고 불펜들을 동원하며 힘들게 경기를 펼친 끝에 3-5로 패해 낙향해야 했다. 대회 1회전서 장안고를 9-7로 꺾은 데 이어 2회전서 포항제철고에 7-2로 승리하는 등 선전을 펼쳤으나 얇은 선수층에 더 이상 대회에 남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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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0만명이 안되는 지방중소도시인 순천시에서 야구의 씨앗을 뿌리고 성장시키고 있는 효천고는 서창기 감독이 23년을 지키면서 전국에서 야구 명문고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다. 서 감독은 “전국대회 지역예선격인 주말리그에서는 전남지역 최강인 광주일고가 그렇게 강해보이지 않는데 이틀에 한 번꼴로 경기를 계속하는 전국대회 본선에서는 광주일고가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선수층이 두터운 광주일고를 맞아 지역예선에서는 간간히 승리도 하며 대등해 보이는데 전국대회에 나가보면 선수층 차이로 수준차가 보인다고.
서 감독은 현재의 고교야구 제도가 계속되면 지방중소도시에 위치한 야구팀은 제대로 발전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현제도는 지방의 중학생 유망주가 서울 등 수도권 명문야구고 진학을 하기 위해 떠나면 1년의 유급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기간이 짧기도 하고 부상을 당하면 관리가 제대로 안돼 중도포기자가 나오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주장한다. 유급기간을 좀 더 늘려야 우수자원 유출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고 항변한다.
이런 어려운 지방중소도시 야구 환경에서도 서 감독은 효천고를 꿋꿋하게 지키면서 명문야구고로 이끌고 있다. 1997년 효천고 4대 감독으로 부임한 뒤 현재까지 지도자로 활동 중이다. 체육부장 교사 겸 감독으로 18년간 재직하다가 지난 해 퇴직하고 올해부터는 계약직으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23년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효천고를 전국대회 준우승 3회(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등을 이끌었지만 아직 전국대회 정상을 밟지 못해 우승꿈을 이루는 것이 서 감독의 목표이다.
효천고가 스카우트의 어려움 속에서도 전국 강호의 면모를 지켜온 이면에서는 서 감독의 노력도 컸지만 학교재단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서 감독은 “학교재단의 지원이 없었으면 지금의 효천고 야구부는 있을 수 없었다. 특히 현재 재단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강규동 상무이사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며 학교 재단의 지원에 감사했다. 효천고는 1984년 재일동포인 서채원씨가 국내에 설립한 사립고교이다.
현재 효천고 출신으로 프로야구에서 맹활약했거나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제법 많다. 현대유니콘스에서 마무리투수로 맹위를 떨첬던 조용준과 미국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했던 투수 정성기를 비롯해 한화 타자 이성렬과 투수 이태양, LG 타자 채은성, 롯데 투수 진명호 등이 있다. 현재 활약 중인 효천고 출신 프로선수들은 모두 서 감독의 제자들이다.
야구 불모지나 다름없던 순천에서 우수자원을 키우고 있는 서 감독은 “기본기에 충실한 선수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더 큰 선수가 되라고 지도한다”면서 “선수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다들 열심히 해서 프로나 대학으로 모두 진출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 감독은 광주일고와 성균관대 출신으로 선수시절 2루수로 뛰었다. 고향팀 해태 타이거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멤버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쌍방울에서 코치와 스카우트로 활동하다가 효천고 4대 감독으로 부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 감독은 겉모습은 엄하고 강해 보이지만 유머 넘치고 재치 있는 말솜씨가 좋아 주변에 좋아하는 지인들이 많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잘 웃지 않는 엄한 지도자라고.
지방중소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야구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 빨리 조성돼 효천고와 서 감독의 전국대회 정상의 꿈이 빨리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글=박선양 기자 sun@osen.co.kr, 사진=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