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김신욱(31·상하이 선화)에게 중국 대륙도 너무 좁은 무대였다.
지난 7월 중국슈퍼리그(CSL) 상하이 선화로 이적한 김신욱이 연일 맹활약을 펼치며 중국 축구계를 매료시켰다. 상하이는 지난 7월 8일 K리그1 전북 현대에서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영입했다. 구체적인 이적료와 연봉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김신욱이 거절하기 힘든 수준의 거액이란 것이 전해졌다.
당시 상하이는 리그에서 3승 3무 10패로 16경기에서 승점을 단 12점밖에 얻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상하이는 키케 플로레스 전 감독과 계약을 해지하고 최강희 감독을 선임했다. 다롄에서 실패의 쓴맛을 보고 상하이의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 애제자 김신욱을 영입하며 명예 회복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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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데뷔
김신욱은 상하이 이적 후 첫 경기에서 바로 득점포를 가동했다. 지난 7월 12일 랑팡스타디움에서 열린 CSL 17라운드 허베이 화샤와 경기에 선발 출전해 전반 14분 만에 머리로 골을 터뜨렸다. 198cm 장신을 이용해 수비수 2명의 견제를 이겨내고 터뜨린 골이다. 상하이는 이날 김신욱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1-2로 패하며 3연패 수렁에 빠졌다.
김신욱의 빠른 데뷔골에도 중국 현지의 전망은 회의적이었다. 스스로 찬스를 만드는 능력이 부족하단 이미지 탓에 동료들의 수준에 따라 김신욱의 득점력에도 편차가 생길 것이라 여겼다. 중국 매체 ‘시나스포츠’는 “김신욱의 포스트 플레이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동안 전북에서 받던 크로스와는 차이가 분명하다”면서 “이용, 김진수 등에 크로스를 받던 김신욱은 그 차이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라고 걱정했다.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김신욱은 자신의 CSL 2번째 경기인 허난 젠예와 18라운드 홈경기에서 전반 16분 만에 팀의 선제골을 넣었다. 상하이는 3-2로 승리해 3연패에서 탈출했다.
김신욱은 이후 치러진 베이징 런허와 리그 19라운드에서도 경기 초반 선제골을 작렬했다. 역시 차오윈딩의 크로스를 받아 아크로바틱한 발리 슈팅으로 골문을 갈랐다. 팀의 2연승을 이끄는 3경기 연속골로 김신욱은 상하이의 확실한 공격 옵션으로 거듭났다.
‘아시아의 즐라탄’, ‘오빠(欧巴)’ 열풍
김신욱이 3경기 연속골을 터뜨리지 그를 향해 회의적이던 중국 언론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베이징전에서 터뜨린 묘기에 가까운 김신욱의 슈팅으로 보고 중국 언론은 그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LA 갤럭시)에 빗대어 칭찬했다. 시나스포츠는 “김신욱이 차오윈딩의 크로스를 즐라탄과 같은 모습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면서 “아시아의 즐라탄에 경의를 표하라”며 김신욱의 활약을 조명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김신욱을 한류스타에게 사용하는 별칭을 붙였다. 중국 매체 ‘골 차이나’는 7월 24일 상하이와 톈진 터다의 중국FA(CFA컵) 8강을 앞두고 “김신욱 오빠(欧巴)는 큰 신장으로 CSL 최고 무대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어로 ‘오빠’를 뜻하는 단어인 ‘오빠(欧巴)’는 중국 현지에서 남성 한류스타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한국어 발음을 중국어로 음차 하여 만든 신조어다. 이는 김신욱이 중국 현지에서 한류스타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증거다.
김신욱은 경기장 안에서 기량 뿐만 아니라 팀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로도 현지 팬들을 사로잡았다. 골차이나는 “김신욱은 팀에 합류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팀원들과 가까워지려 노력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자신의 득점이 모두 동료들과 감독 덕이라며 공을 돌린다”라며 김신욱의 겸손함을 칭찬했다.
최강희 상하이 감독은 톈진 터다와 CFA컵 8강 경기에서는 김신욱에게 휴식을 줬다. 꿀 같은 휴식을 취한 김신욱은 최 감독의 배려에 골로 보답했다. 김신욱은 7월 27일 열린 CSL 20라운드 광저우 R&F와 경기서 선발 출장해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어 열린 우한 줘얼과 21라운드에서도 멀티골을 터뜨려 5경기 연속 득점 행진을 이어갔다. 김신욱은 이날 득점으로 한 달 만에 중국에서 8골을 터뜨리는 괴력을 뽐냈다.
집중 견제 이겨낸 김신욱
연속골 행진을 이어가는 김신욱은 자연스럽게 상대 수비의 집중 견제가 쏟아졌다. 8월 18일 열린 톈진 톈하이와 리그 경기서 김신욱은 연속골 행진을 마무리했다. 김신욱은 지난해까지 전북에서 선수와 코치의 연을 맺었던 박충균 톈하이 감독의 맞춤 전술에 막혔다.
이날 경기 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박 감독은 “선수들과 상하이의 공격패턴을 완벽하게 분석했다. 주로 타깃형 공격수(김신욱)를 활용한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로 경기에 들어서 박 감독은 한국인 수비수 송주훈에 김신욱 전담 마크를 지시했다.
이미 K리그에서 김신욱과 상대한 경험이 있는 송주훈은 김신욱의 발을 꽁꽁 묶었다. 전반 세트피스 찬스에서 김신욱에 기회를 내주기는 했지만 상하이의 확실한 공격 루트를 막았다. 그 때문에 상하이와 톈하이는 이날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뒀다.
득점행진은 멈춘 김신욱은 ‘도우미 본능’을 발휘해 위기를 타개했다. 김신욱은 8월 19일 열린 다롄 이팡과 CFA컵 4강전을 앞두고 “상대가 나에 대한 집중 견제로 동료들에게 좋은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며 이타적인 플레이를 예고했다.
상하이는 다롄과 경기에서 김신욱의 이타적인 플레이 덕에 3-2로 역전승해 CFA컵 결승에 진출했다. 스테판 엘샤라위의 멀티골, 지오반니 모레노의 쐐기골 모두 김신욱에 수비가 몰리며 생긴 공간에서 나왔다. 김신욱은 이날 2도움을 기록해 득점 없이도 위협적인 선수란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미 아시아 정상급 공격수 입지를 구축한 김신욱은 중국 진출 이후 더욱 위협적인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상하이는 16팀 중 13위(승점 23)로 리그 성적으로는 ACL 진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ACL 출전권이 주어지는 CFA컵에서 우승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김신욱이 득점과 도움 행진을 이어가며 다음 시즌 상하이가 ACL 무대에서 도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글=우충원 기자 10bird@osen.co.kr 이승우 기자 raul1649@osen.co.kr, 사진=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