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고 시절 오지환(LG), 안치홍(KIA), 김상수(삼성)와 함께 ‘유격수 4대 천왕’으로 불렸던 이학주(삼성)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해마다 유망주 랭킹에 이름을 올릴 만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11년 탬파베이 레이스로 이적했고 2013년 메이저리그 승격을 앞두고 트리플A에서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중부상을 입어 꿈이 좌절됐다.
2016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트리플A를 마지막으로 미국 생활을 마감했다. 마이너리그 통산 678경기에 뛰면서 타율 2할6푼9리 689안타 23홈런 209타점 408득점 169도루 284볼넷 581삼진 OPS .709를 기록했다. 2017년 일본 독립리그 도쿠시마 인디고삭스에서 뛰면서 프로 복귀에 대한 꿈을 이어갔다.
지난해 9월 10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9 KBO 신인드래프트. 이학주는 삼성의 부름을 받았다. 노시환과 이학주를 놓고 저울질했던 삼성은 팀내 내야 자원이 부족한 가운데 즉시 전력 보강을 위해 이학주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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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던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된 것 같다. 그동안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시키는 대로만 했었는데 미국에서 나 스스로 해야 하니까 야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능동적으로 바뀐 것 같다.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이학주는 미국에서 뛰었던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야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무릎 부상만 아니었다면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게 됐을지 모른다. 이학주는 “나도 ‘무릎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열심히 훈련하면서 몸도 잘 만들어왔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안타깝지만 이곳에서 더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그는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류현진(LA 다저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최지만(탬파베이 레이스) 등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고 털어놓았다.
“선후배들은 언제나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고 뛴다. 정말 대단하고 힘든 삶 속에서 고통도 있을 텐데 이겨내는 걸 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그렇다”.
이학주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무대에 진출하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멘탈이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낯선 곳에 가면 당연히 두려운 마음이 생기겠지만 절대 겁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껏 하던 대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야구는 멘탈이 가장 중요하다. 체격이 큰 외국인 선수들을 보면서 위축되면 안 된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으로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절대 겁내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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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다시 한국에서 야구를 시작하게 된 이학주. 그토록 바라던 메이저리그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다시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요즘이다.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잘 챙겨주시고 동료들도 많이 도와준 덕분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게 이학주의 말이다.
특히 김상수는 이학주에게 든든한 친구이자 적응 도우미다 “(김)상수가 입단 후 계속 도움을 주고 있다. 상수는 11년차지만 나는 1년차에 불과하다. 많이 배우고 있고 소통하면서 지내고 있다. 서로 의기투합하며 잘하고 있다. 정말 좋다”.
이학주는 시즌 초반 잦은 수비 실책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멘붕’이었다.
“실책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 ‘이렇게 하다간 큰일 난다’, ‘팀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불현듯 ‘실책을 더 해보자’는 식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학주는 박진만 수비 코치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코치님께서 항상 ‘학주야, 천천히 하면 된다’고 늘 강조하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가진 실력을 믿고 서두른 부분도 없지 않다. 언제부턴가 실책한 뒤 코치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천천히 하다 보니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데뷔 첫 끝내기 안타 후 이학주의 눈물
올 시즌 삼성의 전력 상승 요소로 주목을 받았으나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던 이학주.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던 그는 4월 18일 포항 키움전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4-4로 맞선 연장 11회 1사 2루서 한현희에게서 중견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때려냈다. 국내 무대 첫 끝내기 안타.
키움에 이틀 연속 덜미를 잡혔던 삼성은 이학주의 한 방에 힘입어 3연패 위기에서 벗어났다. “되돌아봤을 때 제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사실 기대했던 모습이 나오지 않아 정말 죄송스러웠다. 많은 걸 보여주기보다 조금씩 천천히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이학주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때렸지만 분위기는 살짝 무거웠다. 그동안 국내 무대 연착륙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 속에 마음고생을 한 이학주. 상처도 많이 받았던 그는 꾹꾹 눌러놓은 답답했던 마음이 끝내기 안타로 잠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울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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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주는 팀 동료가 된 김동엽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동엽이는 대은이형과 재훈이와 달리 KBO리그 선배님이시다. 2년 연속 20홈런을 달성한 대단한 타자다. 내가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언제나 유쾌한 이학주는 ‘흥부자’로 불린다. 평소에 흥과 끼가 넘치는 그는 7월 21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도 최고의 퍼포먼스로 팬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6회 대타로 등장한 이학주는 김상헌 삼성 응원단장의 옷을 입고 타석에 들어섰다. 팬들이 이학주의 응원가를 부르자 리듬에 맞춰 몸을 들썩였다.
“타석에 들어설 때 응원가를 들으면 힘이 절로 난다. 혼자 있을 때 따라 해보기도 한다. 누가 만든 지 모르겠지만 진짜 잘 만든 것 같다. 정말 감사드린다”.
이학주는 “평소 흥이 넘치는 편이다. 그런데 동료들이 너무 진지하다. 한 번씩 흥을 내면 다들 놀란다. 받아주는 건 (김)상수뿐이다. 그나마 상수가 있으니까 덜 심심하다”고 웃어 보였다.
앞으로 10년간 즐겁고 재미있게 야구하고 싶다
이학주는 전반기 타율 2할6푼(288타수 75안타) 6홈런 28타점 30득점 14도루를 기록했다. 그는 전반기를 되돌아보며 “캠프를 치르면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리그에 좋은 선수가 많고 대단한 투수들도 많다. 그동안 연구에 미흡했었다. 데이터가 정말 많아서 놀랐다. 코치님들과 데이터를 보면서 많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보다 내년이 더 기대된다’는 평가에 대해 “개인 성적보다 팀이 더 잘했으면 좋겠다. 전반기에 승리보다 패배가 더 많았지만 아직 5강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더 할 수도 있고 덜 할 수도 있겠지만 향후 10년간 즐겁고 재미있게 야구하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이학주는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기회가 된다면 태극마크를 한번 달고 싶다. 이학주 하면 대한민국 최고의 유격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후회 없이 해보겠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글=손찬익 what@osen.co.kr, 사진=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