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원맨팀 아닌 원팀, 정정용호의 성공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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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18, 발렌시아)의 원맨팀이 아닌 원팀 정정용호의 유쾌한 반란이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은 지난달 16일 폴란드서 끝난 2019 FIFA(국제축구연맹) U-20 남자 월드컵 결승전서 우크라이나에 1-3으로 석패하며 역사적인 준우승을 차지했다.

정정용호는 폴란드서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남자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올랐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를 넘어 한국 남자 축구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준우승을 거둔 U-20 대표팀의 환영행사에서 정정용 감독이 무대 위에서 헹가래를 받고 있다.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정정용호는 또한 FIFA 주관 세계대회(월드컵, 올림픽, U-20 월드컵, U-17 월드컵)서 4승 1무 1패라는 눈부신 성적표를 받으며 한국 남자 축구 역사상 최다승 기록(종전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 2002 한일 월드컵 3승)도 갈아치웠다.

정정용호의 별 이강인

정정용호에서 가장 돋보인 건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FIFA 주관 대회서 골든볼(MVP)을 거머쥔 ‘막내형’ 이강인이다. 형들보다 2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군계일학의 기량을 과시하며 U-20 월드컵 무대를 평정했다. 아시아 선수로는 2003년 이스마일 마타르(아랍에미리트)에 이어 두 번째 골든볼을 안은 주인공이 됐다.

이강인은 아시아 선수 최초로 결승전 득점을 포함해 이번 대회 총 2골 4도움으로 한국의 준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강인이 기록한 4도움은 FIFA 주관 세계대회 한국 선수의 한 대회 최다 도움 기록(종전 2002 월드컵 이을용 이영표, 2010 남아공 월드컵 기성용 등 8명의 2도움)이었을 정도로 활약상이 대단했다.

이강인은 대회 최우수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수상하며 준우승의 아쉬움을 달랬다. 2005년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 2007년 세르히오 아게로(맨체스터 시티), 2013년 폴 포그바(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위대한 발자취를 따랐다. 모두가 세계 축구를 호령하고 있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다.

이강인은 특히 메시 이후 14년 만에 18세에 골든볼을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이번 대회 활약으로 레반테, 셀타 비고(이상 스페인), 아약스, PSV 아인트호벤(이상 네덜란드) 등 유럽 구단들의 관심을 받고 있어 올 여름 거취에도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원팀 정정용호

정정용호는 당초 골짜기 세대로 불리며 앞선 세대와 비교됐다. 2017년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은 바르사 유스 출신 이승우(헬라스 베로나)와 백승호(지로나)를 위시한 황금세대라는 기대감에 안방 효과까지 더해져 U-20 월드컵(당시 성적은 16강)을 향한 팬들의 관심이 상당했다.

정정용호는 2년 전 ‘신태용호’와는 다르게 이강인 외에는 특출난 스타가 없었다. 이미 A매치에 데뷔한 김정민(리퍼링), K리그서 두각을 나타낸 전세진(수원 삼성), 조영욱(서울) 등이 그나마 이름값 있는 선수들이었다. 설상가상 최근 바이에른 뮌헨서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한 정우영의 합류가 불발되면서 전력 약화까지 떠안았다.

정정용호는 보란 듯이 유쾌한 반란을 일으켰다. 이강인의 ‘원맨팀’이 아닌 ‘원팀’으로 한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덕장’ 정정용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혼연일체가 돼 제자들을 이끌었다. 결승전서 우크라이나에 패한 뒤 “선수들은 잘했지만 감독의 역량이 부족했다”던 수장의 말 속에 정정용호의 원팀 정신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회 내내 선방쇼를 펼친 골키퍼 이광연(강원), 장신 공격수로 무한한 가능성을 선보인 오세훈(아산), 선발과 백업을 오가며 맹활약한 조영욱과 엄원상(광주), 음지서 빛난 김현우(디나모 자그레브), 황태현(안산), 최준(연세대), 정호진(고려대) 등의 활약이 없었다면 정정용호의 성공신화도 없었다.

결승전서 단 10분간 그라운드를 누빈 이규혁(제주)은 정정용호가 진정한 원팀이라는 걸 보여준 산증인이었다. 이규혁은 우크라이나와 결승전 전까지 필드 플레이어(18명) 중 유일하게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그럼에도 동료들 사이에서 싫은 내색 하나 내지 않은 채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이규혁은 소위 ‘특공대’로 불린 훈련조서 특공대장을 맡아 정정용호가 원팀이 되는 데 윤활유 역을 톡톡히 했다. 정정용 감독은 결승전 후반 35분 이규혁을 투입하며 비로소 진정한 원팀을 완성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정정용호의 21명 중 골키퍼 2명(박지민, 최민수)을 제외하곤 필드 플레이어 18명 전원과 골키퍼 이광연 등 19명이 그라운드를 밟았다. 포지션 특성상 선수 교체가 어려운 골키퍼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 선수가 출전한 셈이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준우승을 거둔 U-20 대표팀의 환영행사에서 이강인이 정정용 감독과 포옹을 하고 있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네버엔딩 원팀

정정용 감독은 지난달 17일 귀국 인터뷰서 “임금이 있어 백성이 있는 게 아니라 백성이 있어 임금이 있다. 선수들이 있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며 성공신화를 쓴 비결로 원팀을 꼽았다.

정정용호의 주장 황태현은 “승리한 것도 팀으로, 패한 것도 팀으로 했던 일”이라며 “특정 선수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경계했다”며 남달랐던 원팀의 성공 비결을 전했다.

김대환 골키퍼 코치는 “내가 현역 시절 벤치 신세다 보니 벤치 선수들의 마음을 잘 안다. 2명의 골키퍼 선수들에게 얘기하면서 언젠간 기회가 온다고 다독였다”고 회상했다.

공오균 코치는 “훈련조 대장으로 이규혁이 워낙 잘해줘서 팀 분위기가 좋았다”며 “내 마음 속 골든볼은 규혁”이라며 엄지를 세웠다.

대회 최고의 별로 꼽힌 이강인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원팀이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며 “형들이 없었다면 절대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라고 겸손의 미덕을 보였다.

언성 히어로(unsung hero, 숨은 영웅) 이규혁은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최고의 15분을 만들어준 정정용 감독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조별리그 3차전), 일본전(16강) 헤더골 주인공인 오세훈은 “골을 넣을 수 있어서 영광이고 모두 동료들 덕이다. 이번 대회로 희생이란 것을 배웠다”고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끝까지 원팀이었던 정정용호는 한국 축구 역사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글=이균재 기자 dolyng@osen.co.kr, 이승우 인턴기자 raul164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