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타자→투수’ SK 하재훈, 비룡 군단의 강심장 마무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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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하재훈(29)은 2019시즌 KBO리그 신인이지만 다채로운 이력을 지니고 있다.

10년 전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컵스와 계약한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빅리거를 꿈꿨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열린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해 SK의 지명을 받았다.

하재훈은 ‘타자’였다. 미국과 일본에서 가끔 투수로도 뛰었지만, 그의 꿈은 타자였다. 그러나 SK는 하재훈을 투수로서 재능을 보고 지명했다. 하재훈은 구단의 뜻에 따라 타자를 완전히 포기하고 투수의 길로 들어섰다. 타의로 시작한 투수 풀타임 첫 해,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는 마무리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멈추다

마이너리그 시절이 지금까지 야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까. 하재훈은 “심적으로 가장 힘들 때는 미국에서 마이너리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였다. 앞으로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할까 고민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2009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2009년 하위싱글A, 2010년 싱글A, 2011년 상위싱글A-더블A, 2012년 더블A, 2013년 더블A-트리플A, 2014년 더블A-트리플A, 2015년 하위싱글A에서 뛰었다.

타자로서 마이너리그 통산 성적은 610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6푼5리(2311타수 286안타) 38홈런 288타점 286득점 OPS .690이었다.

트리플A까지 올라갔지만,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하재훈은 “부상이 많았다. 욕심이 앞서서 거의 매년 부상을 당했다. 무릎이랑 허리를 다쳐서 2~3개월 쉬었다가 합류하기도 하고, 뇌진탕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기도 했다”며 “시즌 초반에 좀 좋았다가 중반에는 부상으로 기록이 없고, 후반에 복귀해서는 성적이 훅 떨어졌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2013년 왼 손목 부상이 치명적이었다. 그는 “왼 손목 연골이 터졌다. 고질적으로 아프다가 큰 부상을 당했다”고 말했다.


방망이 내려놓고 야구공을 던지다

2014시즌을 마치고 팀에서 ‘투수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고교 때 포수였던 그의 어깨가 강해 공이 빨랐다. 그는 “이전에도 팀에서는 계속 투수를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투수하기 싫었다. 타자가 좋았다. 그런데 부상으로 성적이 안 나오면서 팀의 결정에 따랐다. 중간으로, 마무리도 던졌다”고 했다.

루키리그 AZL 컵스로 내려가 투수를 본격적으로 준비했고 싱글A에서 뛰었다. 2015시즌 투수로서 16경기 3승 무패 평균자책 2.33(27이닝 8실점 7자책) 24피안타 14사사구 29탈삼진 WHIP 1.37을 기록했다. 그는 “1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다가 마지막 경기에서 4실점하면서 2점대로 마쳤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2015시즌이 미국에서 마지막이 됐다. 하재훈은 “투수를 시작하면서 성적이 좋으면 곧바로 트리플A로 올려준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2015시즌이 끝나고 말이 달라졌다. 싱글A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야 한다더라. 나이도 있고, 힘들다고 봤다. 마이너리그 FA였고, 팀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 다른 팀과 계약이 되지 않아 귀국했다.

일본으로 가다, 타자와 투수 ‘이도류’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마이너리그보다 더 힘든 길을 선택했다. 일본 독립리그를 찾아가 야구를 계속하기로 했다. KBO리그를 거치지 않고 해외에 진출한 선수는 KBO리그로 복귀할 때 2년 동안 드래프트 참가 제한 규정이 있다.

하재훈은 “마이너리그에서 생활이나 이런 게 힘들었지만 일본 독립리그에서 뛸 때도 힘들었다. 오히려 마이너리그보다 더 힘들다고 할까. (월급이 적어) 내 돈을 쓰면서 뛰어야 하고,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지내야 했다”고 돌아봤다.

타자로서 야구를 하고 싶었기에 독립리그까지 갔다. 그런데 일본 독립리그에서도 투수를 병행했다. 그는 “투수는 재미로 한 거였다. 투수를 해보라고 해서 잘 던지니까 10~20경기 정도 등판한 것 같다. 중견수로 뛰다가 경기 후반에는 마운드에 올라가, 고교야구처럼 야수 하다가 마무리를 했다”고 웃었다.

2016년 5월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잠깐 뛰기도 했다. 그러나 1군 출장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재훈은 “솔직히 야쿠르트에서 큰 기대를 갖고 영입한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 투수가 1군에서 선발로 던지고 빠질 때 내가 1군에 불려 올라갔다. 선발이 돌아오면 다시 빠지고 그랬다”고 설명했다. 17경기 출장에 그친 후 7월말 2군으로 내려간 뒤 다시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SK의 지명, 그런데 타자가 아닌 투수다

해외파의 2년 제한이 지나고, 2019 신인 드래프트에 참석한 하재훈은 SK의 지명을 받았다. 그런데 ‘투수 하재훈’이었다.

하재훈은 “나는 타자 하재훈으로 드래프트에 참가했는데, SK가 투수로 부르더라. 타자로 신청하면 타자로 뛰는 줄 알았는데…솔직히 투수라고 불러서 약간 패닉이었다”라며 “지명 이후 구단으로부터 설득을 당했다”고 말했다.

진상봉 운영팀장, 조영민 스카우트팀장 등이 번갈아 하재훈 설득에 나섰다. 하재훈은 “내가 타자로서 불안한 것도 있고, 왜냐하면 왼 손목을 과거 다쳐서 안 좋으니까. 그렇게 투수를 하기로 설득 당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재훈을 투수로 점찍고 지명한 염경엽 감독은 스프링캠프 명단에 하재훈을 포함시켰다. 캠프를 치르며 불펜에서 1이닝 던지는 투수로서 가능성을 봤다. 구속이 빨라 불펜 경험을 쌓게 하면 2~3년 후 마무리 투수로 기대했다.

그런데 시즌이 시작되고 ‘마무리 하재훈’은 예상보다 빨리 등장했다. 마무리 김태훈이 부진하면서, 정영일 등 집단 마무리 체제를 가동했다. 하재훈이 독보적인 안정감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레 마무리 보직을 차지했다.

6월 26일 36경기에 출장해 5승 1패 17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1.29의 화려한 성적을 기록했다. 30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웠다.

150km 강속구, 강심장 마무리

하재훈은 “수싸움 같은 것은 없다. 타자와는 기싸움이다. 다들 직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직구를 70~80% 비중으로 던지는 것은 누구나 안다”며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 실점 위기 상황이 되면 심리적으로 밀리겠지만, 최대한 안 밀리려고 한다. 안타를 맞더라도 기싸움에서는 밀리지 말자고 생각한다”고 마무리 투수로서 자세를 밝혔다.

그에게 목표를 묻자 “솔직히 없다”고 답했다. 그는 “앞만 보고 달린다. 지금 현재, 1경기, 한 타자에 집중한다. 멀리 보는 것(목표)에 맞추면 꼭 몸에 무리가 온다. 목표 성적을 내고 싶은 마음에 무리하게 된다. 미국에서 그런 경험을 했고, 목표를 잡는 순간 다치더라. 내 성격이 무조건 올인하기에 그런 식으로 부상을 당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마무리 투수의 매력 같은 것은 아직 느낄 시간이 없다”고 덧붙였다.

투수 전향 후 첫 시즌, 부담백배인 마무리를 맡아 기대 이상의 활약이다. 이 정도까지 예상했을까. 하재훈은 “어느 정도 할거라는 생각 자체을 안 했기에 모르겠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투수로서 이 정도 성적은 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마지막 경기에서 터지면서 평균자책점 1점대에서 2점대로 올라갔지만, 일본 독립리그에서는 점수를 1점도 안 줬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글=한용섭 orange@osen.co.kr, 사진=민경훈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