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흥국생명, V4 달성 이야기

  • 이메일
  • 트위터
  • 페이스북
  • 페이스북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울린 투혼

3월 2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 챔피언결정전 3차전, 현대캐피탈 크리스티안 파다르(33)의 서브가 정확하게 대한항공의 코트에 꽂혔다. 현대캐피탈의 챔피언결정전 통산 4번째 우승이 확정되 는 순간이었다.

정규리그를 2위로 마친 현대캐피탈은 플레이오프에서 우리카드를 2승으로 제압했다. 1차전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한 주포 파다르가 2차전을 앞두고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대형 악재를 만났지만, 프로 3년차 허수봉이 개인 최다인 20점을 올리는 만점 활약을 하며 챔피언결정전 티켓을 안 겼다.

OSEN DB.
5전 3선승제로 진행되는 챔피언결정전. 정규시즌 치열한 순위 다툼을 펼쳤던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은 시작부터 불꽃 튀는 접전을 펼쳤다. 1~2차전을 모두 풀세트로 가는 승부를 펼쳤고, 현대 캐피탈은 막판 집중력을 발휘해 모두 승리를 잡았다. 그리고 3차전, 블로킹과 서브에서 모두 대한항공을 압도한 현대캐피탈은 2년 만에 챔프전 정상 탈환에 성공했다.

‘울보’ 최태웅 감독은 우승 후 눈물을 쏟았다. 노재욱(우리카드)이 FA 전광인의 보상 선수로 팀을 떠나면서 많은 부담을 떠안아야 했던 이승원 생각 때문이다. 주전 세터로 도약했지만 이승원은 발목과 손 부상 등으로 힘든 시즌을 보냈다. 아울러 주전 세터라는 중압감에 경기에서 100% 실 력 발휘가 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세터 출신 최태웅 감독은 이승원의 이런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마음 속 MVP는 이승원”이라며 눈물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최태웅 감독은 “힘들고 부상도 많았는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잘 해준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왔다”라며 “스스로 부족한 점을 알고 혹독하게 연습을 했는데, 실력이 나오려고 하면 부상이 이어졌다”고 각별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한국배구연맹(KOVO)컵 경기 중 최태웅 감독으로부터 “여기(현대캐피탈) 왜 왔어”라 는 호된 질책을 들은 전광인은 ‘MVP’가 되며 물음에 답했다. 전광인은 챔프전 3경기에서 55득점, 공격성공률 55.1%로 활약하며 현대캐피탈의 공격을 이끌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한국전력에서 현대캐피탈로 이적한 전광인은 개인 첫 우승과 MVP를 동시에 잡으며 최고의 1년을 보냈다. 전광인은 “처음해봐서 그런지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라며 “솔직히 내가 (MVP를) 받아도 되나 싶다. 다른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는데, 감사히 받겠다”고 활짝 웃었다. 고질적인 무릎 통증으로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진통제 투혼’을 발휘했던 전광인은 시즌 종료 후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 재활 기간은 5개월로 2019-2020 시즌 준비에는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흥국생명이 12년 만에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김천, 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
박미희 감독, 그가 가는 길이 역사다
2017-2018시즌을 최하위로 마친 흥국생명은 절치부심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알토란 FA 영입부터 나섰다. 높이가 약점으로 꼽히면서 ‘베테랑 센터’ 김세영을 영입했고, 이재영의 짐을 덜어 줄 ‘살림꾼’ 김미연도 합류했다. 동시에 신인 이주아와 외국인 선수 톰시아도 쏠쏠한 활약을 펼쳤 고, ‘핑크 폭격기’ 이재영은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힘을 보탰다.

모든 톱니가 제대로 맞물리기 시작한 흥국생명은 완벽하게 달라졌다. 정규시즌 21승 9패(승점 62점)로 ‘디펜딩 챔피언’ 한국도로공사(20승 10패, 승점 56점)를 따돌리고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했다.

2년 만에 정규시즌 정상에 선 흥국생명은 챔피언결정전에서 도로공사를 3승 1패로 제압해 12년 만에 통합 우승까지 달성했다. 아울러 2008-2009 시즌 이후 10년 만에 통산 4번째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며 여자부 최다 우승팀으로 올라섰다.

MVP는 이재영에게 돌아갔다. 챔피언결정전 4경기에서 107득점 공격성공률 37.8%를 기록한 이재영은 ‘만장일치’ MVP에 올랐다. 경기가 끝나고 박미희 감독 및 선수들과 포옹하며 눈물을 흘린 이재영은 “다른 선수들도 정말 잘했는데 나만 MVP를 받은 것 같아 미안하다”라며 “상금으로 엄청 비싸고 맛있는 밥을 살 생각”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날 우승으로 박미희 감독은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2년 전 4대 프로스포츠(야구, 축구, 농구, 배구) 여성 감독 최초 정규시즌 우승을 일궈 낸 박미희 감독은 통합우승까지 달성 했다.

박미희 감독도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우승 후 눈물로 내비쳤다. 박미희 감독은 “2년 전 우승할 당시 한 기사에 ‘그녀가 가는 길은 역사가 된다’라는 말이 있었다. 현장에 있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했던 순간이 있다. 내가 큰 사람은 아니지만, 여성 감독으로서의 책임이 컸던 것 같다”로 털어놨다. 이어서 박 감독은 “겉으로는 (여성이 아닌) 똑같은 지도자로 봐달라고 했지만, 부담이 컸다.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할 수 있지만, 해야 된다면 내가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났다. 최소한 후배의 길은 막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1985년 미도파 시절 우승을 경험한 박미희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정상에 섰다. 박미희 감독은 “그만둘 때까지 새로운 목표가 생길 것 같다. 선수 때는 우승이 가장 힘든 줄 알았는데, 지도자를 해보니 더 힘들더라”라며 “현장을 떠날 때까지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선수들이 본 박미희 감독의 리더십은 어떨까.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엄마 같다”고 이야기했다. 배구는 물론 생활 전반에서 박미희 감독의 세심한 관리가 이어진다. “진짜 엄마 같다. 함께 있을 때 배구 이야기 말고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다. ‘방환기 잘 시켜라’, ‘야식을 먹더라도 밥은 꼭 챙겨 먹어라’와 같은 이야기다.” ‘베테랑’ 김해란도 피할 수 없는 박미희 감독표 잔소리다. /이종서 기자 bellsto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