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국 메이저리그를 누비는 ‘코리안 빅리거’들의 활약이 뜨겁다. 개막전 선발투수로 나선 류현진(LA 다저스)을 비롯해 추신수(텍사스), 오승환(콜로라도), 강정호(피츠버그), 최지만(탬파베이) 등 5명의 선수들이 개막 로스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 한국인 빅리거 5총사 모두 저마다 입지를 단단히 구축하며 최고 시즌을 향하고 있다. (모든 성적은 4월 29일 기준, 한국시간)
개막전 제외 추신수, 충격 딛고 질주
출발이 가장 힘들었던 선수는 ‘맏형’ 추신수였다.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는 충격을 겪었다. 베테랑 우타자 헌터 펜스에게 적응할 기회를 주고 싶었던 크리스 우드워드 텍사스 신임 감독이 개막전 상대 시카고 컵스가 좌완 선발투수(존 레스터)를 내세우자 추신수를 벤치에 앉혔다. 추신수가 개막전 선발에서 제외된 건 200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이후 11년 만이었다. 지난해 텍사스 팀 내 유일한 올스타이자 최고참 선수가 된 추신수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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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우드워드 감독도 이례적으로 현지 언론을 통해 “추신수를 개막전에서 제외한 건 나의 실수였다”며 사과했다. 우드워드 감독은 “추신수는 지금까지 내가 본 선수 중 가장 준비가 잘 된 프로 선수다. 그의 성공에 놀라지 않는 이유”라며 “추신수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그에 대한 나의 존경심을 키웠다”고 극찬했다. 팀을 위해 결정을 받아들인 뒤 실력으로 증명한 추신수를 인정했다. 추신수도 “우드워드 감독과 대화를 통해 존경과 신뢰를 갖고(개막전 일에서) 벗어났다”며 신뢰 관계를 끈끈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인정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추신수는 더욱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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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에도 부상이 류현진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4월 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2회 투구 중 왼쪽 사타구니에 이상 증세를 느꼈다. 지난해에도 같은 부위 부상으로 3개월 장기 결장한 아픔이 있었다. 올해도 불길한 그림자가 찾아왔지만 류현진은 침착했다. 몸에 이상신호가 오자마자 벤치에 교체 사인을 냈다. 미련 없이 마운드에 내려와 상태를 체크했고, 다행히 단순 염좌로 한숨 돌렸다. 이튿날 10일짜리 부상자 명단(IL)에 올랐지만 큰 부상이 아니란 사실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류현진은 “작년처럼 심각한 부상은 아니다. 살짝 경미하게 온 것이다. 작년에는 (근육 찢어지는) 소리가 나기 전에 느낌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오기 전에 잘 멈췄다. 솔직히 겁이 나서 빨리 내려왔다”고 웃으며 말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부상 이후 12일 만에 복귀전에 나섰다. 류현진은 4월 21일 밀워키 브루어스와 원정경기 에 선발 등판, 5⅔이닝 6피안타 1볼넷 9탈삼진 2실점으로 역투했다. 크리스티안 옐리치 에게 솔로 홈런 2방을 맞은 것이 아쉬웠다. 팀 타선이 터지지 않아 시즌 첫 패전을 기록했으나, 건강하게 복귀한 것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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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승환은 아직 여유를 잃지 않고 있다. 그는 “컨디션이나 몸 상태는 괜찮지만 4월 미국 날씨는 일교차, 기온차가 심하다. 거기에 조금 애를 먹고 있다”며 “초반 성적이 썩 좋지 않아 (팬들이) 염려를 많이 하고 계시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 이제 시즌 시작이다. 아쉽긴 하지만 크게 연연할 단계는 아니다. 빨리 떨쳐내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벤치의 믿음도 변함없다. 투수 출신 버드 블랙 콜로라드 감독은 오승환의 한미일 경험과 노하우를 믿는다. 오승환은 “감독님께서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는 이상 야구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야구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며 장난을 자주 친다. 워낙 많이 믿어주신다. 오히려 내가 (감독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것 같다. 코칭스태프에선 아예 걱정을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일 야구를 모두 경험한 베테랑인 만큼 감독의 믿음 속에 흔들리지 않는다. 시즌은 길고, 만회할 기회는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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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강정호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는 “자신감은 항상 있다. 절대 잃지 않는다. 타격은 오르내림이 있다”고 자신했다. 허들 감독도 “강정호는 동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우리는 강정호가 필요하다”며 “그는 오랫동안 리그를 떠나 있었다.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부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회의론이 고개를 들 때 강정호는 홈런으로 실마리를 찾았다. 4월 17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 시즌 2호 홈런 포함 멀티히트로 부진 탈출 계기를 마련했다. 4월 20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선 매디슨 범가너 상대로 안타와 볼넷을 1개씩 얻어 멀티 출루에 성공했다.
시즌 24경기 성적은 타율 1할6푼(75타수 12안타) 4홈런 8타점 OPS .582. 볼넷 6개를 얻는 동안 삼진 28개를 당했다. 이처럼 2년 공백으로 실전 감각이 떨어져 있지만 간절함은 더 커졌다. 강정호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야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격에선 기복이 있지만 3루 수비는 빈틈 없이 안정적이다. 경쟁자 콜린 모란에 확실한 비교 우위를 점하는 부분. 수비를 중시하는 허들 감독이 강정호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강정호는 “팀에서 수비도 많이 기대하고 있다. 투수들이 믿고 던질 수 있게 집중한다”고 말했다. 수비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타격 회복을 기다릴 시간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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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최지만은 마이너리그에서 빅리그 콜업을 받아 단기간 증명해야 하는 압박을 받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최지만은 “전과 달리 빨리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1루 수비에서도 뛰어난 순발력과 포구 능력으로 기대 이상 모습을 보여주며 풀타임 주전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최지만은 “오프시즌 때부터 (케빈 캐시) 감독님이 1루 수비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수비 연습을 충분히 해서 문제 없다”며 “수비 를 못한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한국 선수에게 수비 못한다고 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강)정호형, (추)신수형도 그렇고 한국 선수들은 수비가 좋다”고 자부심을 보였다.
최지만은 특유의 친화력과 긍정 에너지로 탬파베이 더그아웃, 클럽하우스 분위기까지 이끌 고 있다. 올해는 안타를 치고 난 뒤 더그아웃을 향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세리머니를 한다. 더그아웃에서 허공에 하이파이브를 하는 투명 인간 세리머니도 동료들의 배꼽을 잡게 한다. 최지만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모든 선수가 함께 하는 것이다.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니다”며 웃은 뒤 “젊은 선수들이 많고, 투수들이 정말 좋다. 거기에 타격도 상황에 맞게 이뤄지고 있다. 플레이오프를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첫 풀타임 주전 시즌에 가을야구까지 바라보는 최지만의 넘치는 흥이 탬파베이의 1위 행진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미국=이상학 기자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