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현대자동차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독립한 ‘제네시스’가 첫 번째 SUV를 내놓았다. 4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세상에 나왔으니 브랜드 출범과 동시에 개발이 시작된 셈이다. SUV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기 때문에 한시라도 개발을 늦출 수 없었을 터이다.
제네시스는 GV80의 출시로 세단과 SUV, 양대 진영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세단에서는 G70, G80, G90으로 이어지는 진영이 짜였고 SUV에서는 GV80이 플래그십으로 이제 시장에 나왔다. 한창 개발 중인 GV70까지 가세하면 제네시스는 풀라인업에 한발 다가서게 된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번째 SUV이자, 제네시스 SUV의 플래그십이 될 ‘GV80’은 기대만큼 시장의 반향도 크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GV80의 연간 판매 목표량을 2만 4,000대로 책정했는데, 출시 하루만에 사전예약이 1만 5,000대나 몰렸다고 한다. 시장의 반응이 뜨거운 만큼 차의 가치도 다각도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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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직렬 6기통인가?
직렬 6기통은 ‘V형 6기통’과 대비되는 엔진이다. 현대기아차가 써 오던 6기통 엔진은 영어 알파벳의 V자 형으로 실린더가 각각 좌우로 3개씩 배열된 방식이었다. 이 것이 6개의 실린더를 일렬로 죽 늘어놓은 방식으로 바뀌었다.
전륜구동을 가능하게 한 V형은 직렬에 비해 더 최신의 기술이다. 앞뒤로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직렬 6기통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엔진이 V6다. 글로벌 경쟁 브랜드에 비해 시작이 늦었던 현대자동차는 직렬에서 V형으로 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V형에 뛰어들었다. 결과적으로 직렬 6기통을 이제야 개발하게 됐다.
그렇다면 철 지난 직렬 6기통을 왜 다시 찾게 됐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고, 주행질감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어쩌면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이유가 더 컸는지도 모른다. V형 6기통 엔진으로는 점점 까다로워지는 배출가스 규제를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연구소는 직렬 6기통으로 구조를 바꾸면서 저압과 고압, 2개의 배기가스재순환장치를 달 수 있었다. V형이었으면 양쪽에 2개씩 4개의 장치를 달아야 가능하다. 저압 배기가스재순환장치(LP-EGR)는 펌핑로스를 감소시키면서 미세먼지 발생량을 저감시키는 임무를 주로 맡고, 고압 배기가스재순환장치(HP-EGR)는 EGR의 반응속도 향상에 기여하고 질소산화물 배출을 떨어뜨리는 일을 주로 한다. GV80의 직렬 6기통 엔진은 여기에 요소수를 사용하는 SCR 시스템도 추가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6기통 디젤 엔진은 유로6d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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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80 6기통 엔진에는 경량화 설계도 가세했다. 주철보다 2.7배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실린더 블록을 제조해 V형 대비 무게를 32kg이나 줄일 수 있었다. 인터쿨러도 공랭식에서 수랭식으로 바뀌면서 열관리가 개선됐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는 엔진 스펙에 그대로 반영됐다. GV80에 실린 직렬 6기통 디젤 엔진은 최고 출력 278마력(PS), 최대토크 60.0kgf·m의 파워를 뿜어낸다. 현대차의 종전 V6 대비 출력은 18마력, 토크는 2.9kgf·m가 높아졌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이 새 엔진에 ‘스마트스트림 D3.0’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직렬 6기통이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V형에 자리를 내 줬던 이유는 공간성 때문이다. 직렬은 6개의 실린더를 일렬도 배열하다 보니 엔진룸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단점에도 불구하고 직렬 6기통을 썼다는 것은 곧 후륜구동에 기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차가 이 환경을 수용할 수 있도록 체구가 커야 한다는 전제도 있다.
엔진만 뜯어봐도 ‘제네시스 GV80’의 많은 특성이 설명이 된다. 요약하면, GV80은 국내 SUV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디젤 엔진을 탑재하면서도 까다로워진 배출가스 규제를 충족시켰으며, 고속에서 부드럽고 안정적인 주행질감을 구연해 낸 후륜기반의 대형 SUV이다. 하지만 유로6d를 충족시켰다고 해서 ‘탈디젤’에 역행한 결정의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경유는 어떤 형태로든 연소와 동시에 발암물질을 휘발유보다 더 많이 쏟아낸다. 가솔린 2.5와 3.5 터보 모델은 추후 출시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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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80의 디자인을 지휘한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은 차체를 화려하게 꾸미는 대신 ‘심볼’을 정립하는데 초점을 뒀다. 신형 쏘나타와 그랜저 페이스리프트에서 보여준 대담함은 없지만 향후 제네시스 디자인의 시그널이 될 요소를 제시했다. 이른 바 ‘투 라인’이다. 헤드와 리어, 양 측면램프를 선명한 두 줄로 처리하면서 제네시스 디자인의 시그니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GV80 헤드램프 디자인의 공식 명칭은 ‘쿼드 램프’다. 아래위 두 줄씩 좌우에 4개가 배치됐기 때문에 쿼드 램프가 맞다. 그러나 GV80 디자인팀은 램프가 4개라는 숫자보다는 두 개의 줄을 길게 배치한 ‘투 라인’에 더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요청했다. 도로를 달리다 두 줄 짜리 램프 디자인을 만나면 “앗, 제네시스네”라며 아는 체를 해 달라는 희망이다.
전면 인상을 좌우하는 라디에이터 그릴은 제네시스 세단 라인업에서 보여줬던 디자인을 좀더 계승 발전시켰다. 종전의 디자인이 6각의 헥사고닐에 가까웠다면 GV80은 ‘각’ 보다는 라인에 더 신경을 썼다. 결과적으로 GV80의 그릴 디자인은 방패를 옆으로 길게 펼쳐놓은 듯한 모양이 됐다.
자율주행으로 가는 신기술
GV80이 자랑한 신기술은 고속도로 주행 보조 II(HDA II)와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이다.
고속도로 주행 보조 II(HDA II)는 방향지시등 스위치 조작만으로 스티어링 휠을 제어해 차로 변경을 도와주는 기능이다. 반자율주행에 한 발 더 다가간 첨단 기술이다. 20km/h 이하의 정체 상황에서도 근거리로 끼어드는 차량에 대응한다고 한다.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은 길 안내 시 실제 주행영상 위에 가상의 주행 안내선을 입혀 운전자의 도로 인지를 돕는 기술이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전방 300미터’가 어느 지점인지 헷갈렸던 경험은 누구나 있다. 증강현실은 그 같은 혼란을 크게 줄여줄 수 있다.
하지만 ‘자동 차로 변경’ 기술은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자체에만 의미를 둬야 할 듯하다. 아직은 관련 법령이 따라주지 않아 작동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조작법도 직관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기술은 인간의 개입없이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차를 지향하고 있음이 조금씩 드러났다.
전방 카메라와 내비게이션 정보를 결합해 서스펜션을 자동제어하는 기술도 탑재됐다.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Electronically Controlled Suspension with Road Preview)’이라는 이름의 이 기술은 전방에 과속방지턱 구간이 나타나면 운전석까지 충격이 전달되지 않도록 차가 알아서 서스펜션을 조절해 대응한다. 전방 카메라와 내비게이션 정보가 전방 상황을 인식하는데, GV80에 최초로 적용됐다.
주행 중 발생하는 노면소음을 획기적으로 저감해주는 능동형 노면소음 저감기술(RANC: Road-noise Active Noise Control)도 세계 최초로 도입됐다. 현대자동차와 세계적 오디오 기업 하만이 공동 개발한 이 기술은 반대 위상의 음파를 쏘아 노면 소면을 실시간으로 상쇄시켜 주는 소음 제어 시스템이다.
차량 내 장착된 미세먼지 센서로 실내 공기질을 감지하고, 공기가 나빠지면 공기 청정 모드를 자동으로 작동시키는 기능도 있다. 현대 기아차가 최근 출시한 고급 차량에는 이미 적용돼 있는 기능으로 바깥 공기를 필터로 두 번 정화해 실내에 쾌적한 공기를 제공한다.
‘제네시스 카페이’는 차 안에서 금융 결제를 할 수 있는 간편 결제 서비스다. 주유소나 주차장에서 비용 지불 때 지갑 속 신용카드나 현금을 찾는 번거로움 없이 내비게이션 화면을 통해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 국내 주요 주유·주차 회사 및 카드사와의 협업을 통해 결제 체계를 일부 구현했는데, 일반화되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내차 주변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차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차량 주변의 상황을 확인하고 대처할 수 있다. ‘발레 모드’는 발레 파킹이나 대리 운전 이용 시 인포테인먼트 화면에 사용자의 개인 정보가 나타나지 않도록 설정한다. 개인 정보가 중시되고 있는 시류를 잘 읽은 보안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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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옵션 품목을 보면 전자식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이 350만 원이고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패키지가 180만 원이다.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을 쓰기 위해서는 서라운드 뷰 모니터, 후측방 모니터,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후방 주차 충돌방지 보조가 포함된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1’을 따로 선택해야 한다. 여기에 고속도로 자동 차로 변경 기능을 쓰고자 하면 150만 원짜리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2’를 구입해야 한다.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1 등이 포함된 ‘파퓰러 패키지’는 무려 600만 원이나 한다.
각종 옵션을 모두 선택하면 기본 모델에서 2,390만 원이 더 들어가 풀옵션 차값이 8,970만 원에 이른다. 프리미엄 수입브랜드들과의 가격 경쟁력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오로지 제품력으로 승부하겠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글=강희수 기자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