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KBO리그 스토브리그의 지배자는 롯데 성민규(38) 단장이다. 한 구단의 단장이 이렇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정도로 KBO리그에 새바람을 몰고 왔다. 그가 부임하면서 내뱉은 ‘프로세스(Process·과정)’라는 단어는 올 겨울 최고의 유행어였다.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서 약 12년 간 코치와 스카우트 등을 경험한 성민규 단장은 지난해 9월, 최연소 단장으로 롯데에 부임했다. 이후 약 5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 롯데에서 성민규 단장은 틀을 깼다. 선수단과 조직 개편, 활발한 외부 소통과 결단력 있고 과감한 투자 등 모든 면이 파격이었다.
‘외부인’ 성민규 단장이 주도한 스토브리그. 현재 롯데를 정의하면 성민규 단장 선임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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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규 단장은 한국 야구보다 메이저리그 시스템에 더 익숙한 인물이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조직의 효율성에 방점을 찍으며 조직 개편의 프로세스부터 단행했다. 선수단 개편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외부의 용병이라고 생각하고 롯데에 왔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봤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직 개편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메이저리그에서 12년 동안 보면서 조직이 어떻게 갖춰져야 효율적으로 일 처리를 하고 전 직원이 열심히 할 수 있는지 배웠고 그런 방향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또 그동안 체계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구단 고위층 분들과 공감을 했었다.”
기존 운영팀은 베이스볼 오퍼레이션(Baseball Operation)팀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R&D(Research & Development)팀이 신설됐다. 기존 데이터팀의 역할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한다. 또한 스포츠 사이언스(Sports Science)팀은 선수들의 체력, 부상, 재활, 멘탈 등 선수단 관리를 지휘한다. 스카우트와 육성 파트도 세분화 됐다. 각 팀별로 국내외 능력자들을 모셔왔다.
“전임 사장님께서 배려를 해주시고 그룹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신 덕분에 조직 개편을 이어가는 과정이 수월했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생각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모셔온 분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최고이다. 하지만 기존에 받던 월급보다 더 적게 받고 오셨다. 그렇기에 더욱 고마운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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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명의 선수를 방출했다. 그는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선수들의 의식 변화가 필요했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다. ‘프로 무대는 그냥 있으면 안된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큰 그림을 그리고 행동에 옮겼다. 일년을 쉰 노경은과 FA 계약, 2차 드래프트에서 외야수 최민재 선택, 포수 지성준 트레이드, 안치홍 FA 영입 등 굵직한 이슈들이 연이어 터졌다. 노경은, 최민재, 지성준의 영입은 모두 하나의 줄기였다.
“전력 보강 방법을 여러가지로 고민했다. 일단 노경은 선수와 계약을 하면서 선발진에 여유가 생겼고, 장시환 선수를 카드로 지성준 선수를 영입했다. 2차 드래프트에서는 기존 선수들보다 좋은 선수들도 있었지만 무작정 영입할 수는 없었다. 민병헌, 손아섭 선수가 2년 뒤 FA다. 현재 외야 수비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에 2차 드래프트에서 최민재 선수를 영입했다. 만족한다.”
하지만 플랜A의 결과는 아니었다. 플랜B, 플랜C가 있었기에 발빠르게 대처 할 수 있었다. 최고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다.
“밖에서 보기엔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트레이드를 시도했다. 그래도 차선책을 미리 마련해 둬서 지금 결과들이 나왔다. 만족은 못하지만 최선은 다했다.”
엡스타인의 ‘컵스 5년 플랜’, 롯데에도 적용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에서 코치를 그만 둔 뒤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성민규 단장. 지금의 단장을 꿈꾸게 만든 인물은 자신의 상사였던 엡스타인 사장이다. 성민규 단장은 이런 엡스타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한다.
“엡스타인 사장에게서 과정을 중요시하는 ‘프로세스’, 정에 이끌리지 않고 플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냉철함’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언론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다는 점도 봐왔다.”
다만, 엡스타인 사장과 다른 점이라면 언론 대응이다. 성 단장은 취임 이후 끊임없이 언론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그동안의 행보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한국 야구와 팬들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이라고 항변한다.
“언론 인터뷰를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니까 잘못된 내용이 사실처럼 퍼졌다. 그래서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이 아닌 내용들이 퍼지면 믿음이 떨어지게 된다.”
엡스타인 사장은 2011년 컵스의 사장으로 취임한 뒤 정상궤도로 돌려놓기 위한 시점을 5년으로 내다봤다. 정확히 5년 뒤인 2016년, 컵스는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성 단장도 엡스타인의 구상을 물려받아 롯데의 5년 대권 플랜을 짜고 있다.
“전력으로 보면 5~6년 이상 리빌딩을 해야 하는 팀은 아니다. 또 한국 야구 특성상 리빌딩은 할 수가 없다. 안치홍 선수를 영입하고 전준우 선수를 잔류시킨 이유는 당장 어느 정도 승부를 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야 했다. 그 이후 우승권 전력을 만드는데 5년을 바라보고 있다. 2021년은 가을야구권에서 싸울 수 있는 팀이 되는 과정이고, 2024년 정도가 우승에 승부를 볼 시기라고 생각한다. 신인 선수들과 어린 선수들의 성장, FA 제도 개정과 샐러리캡 등 모든 것들을 감안해 단기, 중기, 장기 플랜들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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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브리그에 잡았던 키를 현장의 허문회 감독에게 넘겨주려고 한다. “올 시즌 키는 선수가 아닌 허문회 감독님이다”고 말하는 성 단장이다. 허문회 감독을 직접 뽑은 성민규 단장은 현장과의 조화를 자신하고 있다.
“소통에서 능력을 인정 받으신 분이고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코치였다. 물론 허 감독님과 항상 잘 맞을 순 없다. 하지만 의견이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허 감독님과 대화를 한다. 의견을 제시하고 수정할 부분은 빠르게 수정하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나가고 있는 것 같다. 허 감독님이 저에게 아닌 부분은 가감없이 말씀을 해주신다. 감독님도 제 의견을 수용해 주실 때는 수용해주신다. 저의 몫은 오프시즌까지라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고 이제 현장에서 감독님께서 팀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셨으면 한다.”
성 단장은 다시 뒷선으로 물러나 프로세스에 의한 팀 체질 개선을 이어간다. 후회없이, 소신을 굽히지 않고 롯데를 이상적인 팀으로 이끌려는 신념이다. 하루살이의 각오다.
“나는 하루살이 계약직이다. 당장 내일 그만두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동안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껏, 당장의 결과와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프로세스에 맞게 지속적인 강팀을 만들어 갈 것이다. 승패는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할 것이다. 훗날에 눈치보지 않고 후회 없이 다 하고 갔다는 얘기를 듣는 단장이 되고 싶다.”
/글=조형래 기자 jhrae@osen.co.kr, 사진=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 김성락 기자 ksl0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