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띠 ‘울프’ 이재완의 소망 “잊히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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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데뷔 후 쉴새 없이 달렸던 ‘울프’ 이재완의 긴 여정이 막을 내렸다. 궂은일을 도맡아야 하는 서포터 포지션에서 이재완은 날카로운 판짜기로 T1(전 SK텔레콤)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재완이 동갑내기 ‘페이커’ 이상혁, ‘뱅’ 배준식과 함께 합작한 국제 대회 우승은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우승 2회(준우승 1회)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 우승 2회(준우승 1회) 등 총 4회에 달한다.

이재완은 이처럼 세계 최고에 올랐던 선수 시절을 뒤로 하고 지난 2019년 11월 29일 ‘공식 은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무대, 관중들의 함성, 대회의 열기를 사랑했던 이재완이 은퇴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래들에 비해 엄청나고, 소중한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라고 밝힌 이재완이었지만 다년 간의 프로생활로 인한 중압감은 그를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이재완은 “정신적인 건강 문제 때문에 은퇴를 결정했어요. 후회는 없지만, 실력은 유지하고 있었기에 아쉽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재완은 7년 간의 프로 생활을 끝마친 뒤 두번째 사회 경험을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을 예정이다. 이에 오쎈플러스에서는 쥐띠 해(경자년)를 맞아 1996년생 이재완의 은퇴 후 계획을 들어봤다.


영광의 나날 뒤로 하고… 은퇴 결정한 ‘울프’

“정말 우연찮은 기회였어요.” T1이 기록한 8번의 리그 우승 중 4번이나 큰 역할을 담당하고, 롤드컵 트로피를 두 번이나 들어올린 이재완이지만 프로게이머 생활은 작은 관심에서 시작됐다. 이재완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바빠 TV와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당시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보며 “은연중에 프로 선수가 되고 싶었던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사실 저는 국어를 잘하는 편이라 교사의 꿈도 가지고 있었어요. 다른 과목의 성적이 낮아 고민하는 와중에 리그 오브 레전드(푸하하) 게임에서 상위 랭크에 들었죠. 이후 여러 팀에 프로 제의를 받게 되었고,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시청하던 기억이 생각나 프로게이머 생활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그날의 결정은 이재완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또래 친구들이 경험하기 힘든 무대를 어린 나이에 숱하게 겪었다. T1 시절 국제 무대를 회상한 이재완은 “가슴이 뛰던 시기였습니다”라며 곱씹었다. 관중들의 함성 소리, 오프닝, 팀원들과 부대끼던 백스테이지는 이재완에게 굉장히 뜨거운 경험으로 남았다.

이후 T1에서 같이 한솥밥을 먹었던 동갑내기들은 한국, 북미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한창인 나이에 결정한 ‘은퇴’라 아쉬운점도 있을 터. 이재완은 “터키에서 활동한 지난 2019년, 롤드컵에 한끗차이로 떨어졌어요. 출전했다면 프로 생활을 유지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며 “아쉽지만 건강상 이제 동료, 팬들에게 해가 될 것 같았어요. 떠나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속마음을 전했다.

다양한 은퇴 후 진로 구상 ‘자격증부터 지도자까지’
이제 일반인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는 이재완은 1월 초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한 뒤 본격적으로 개인 방송을 진행하며 그간 못해왔던 취미들을 즐길 예정이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이재완은 관련 공부를 병행하며 경험을 쌓고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어렸을때 집을 방문한 친구들에게 요리를 자주 해줬으며, 같이 음식을 해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방송의 방향을 ‘운동, 요리’ 쪽으로 잡은 이재완은 “머리속에 맴도는 사업을 하나 하고 싶어요”라며 PC방 창업 계획을 전했다. 이유를 묻자 이재완은 “e스포츠를 좀더 폭넓은 방향으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게끔 하고 싶어요. 제 이름을 걸고 대회를 열고 싶은데,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철학을 들려줬다.

이재완의 아이디어는 실제 북미에서 펼쳐지고 있다. 유명 스트리머 ‘타일러1’은 자신의 이름을 건 대회를 지난 2017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이재완은 기본 이벤트성 대회에 자신의 철학을 더해 “어린 친구들이 성적에 얽매이지 않고 꿈을 키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의견을 냈다.

“한국은 우스갯소리로 전국에 유스 시스템이 깔려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만큼 PC방은 이제 문화로 자리 잡았죠. 저도 PC방에서 게임을 시작해 이 자리까지 왔어요. 제가 건강한 시스템을 구축하면 어린 친구들이 스트레스 없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러면 2, 3부에 입단 제의가 올수도 있죠”

이재완은 1년간 휴식을 취한 뒤 2021년 이후 기회가 된다면, 지도자의 역할도 해보고 싶다는 계획도 전했다. 이재완의 지도 능력은 김정균 감독(현 비시 게이밍)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정말 LOL 판에서 독보적으로 유능한 감독님인 것 같습니다”라며 김정균 감독을 치켜세운 이재완은 약 6년 동안 함께하며 그를 본보기로 삼았다.

“김정균 감독님 밑에서 오랜 기간 피드백을 받으며 지도자의 마음가짐을 배웠어요. 2018년 후반기는 건강 때문에 선수 생활을 쉬고 감독님을 도와드렸는데, 그때 경험도 매우 알찼죠. 오랜기간 최고의 위치에 있던 터라 선수들의 고충 또한 알기 때문에 지도자로써도 제 능력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후배들 위한 조언 아끼지 않은 ‘울프’,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경험이 묻어난 이유일까. 이재완은 인터뷰 동안 ‘건강한 e스포츠 환경’을 강조하며 앞으로 프로 생활을 이어나갈 후배들을 걱정했다. 문득 이재완은 자신의 오랜 꿈이 있었다며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을 꺼냈다. 이재완이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하나였다. 신인들은 인터뷰할 기회가 거의 없는데, 소외된 선수들을 찾아가 목소리를 담고 싶다는 것.

“제가 프로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은, 팀에서 1~2명만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는 것이었어요. 저도 2015년까지 인터뷰를 못했는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된다면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선수들의 스토리를 적고 싶었어요. 신인일수록 소통하는 기회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재완은 후배들에게 ‘끊임 없는 소통’을 주문했다. 이재완은 프로게이머 직종의 특징으로 ‘폐쇄적’을 꼽았으나 “먼저 다가가 알려주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도움을 요청했을때 친절한 사람은 많습니다”라고 밝혔다. 신인일수록 주변에 많이 물어보고, 먼저 꺾이지 말자고 조언했다. 이어 이재완은 ‘에포트’ 이상호를 예로 들며 “나 자신을 믿고 꾸준히 최선을 다하면 좋겠어요”라는 의견을 전했다.

“신인들에게 조언하자면, 성적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1년차때는 소리 소문없이 사라질뻔 했는데, 제가 해야할 것을 열심히 하니 이후에 빛나게 된 것 같아요. 이상호 선수 또한 힘든 시기를 겪고 주전으로 도약했죠. 2019년 들어 출전 기회가 불투명해졌지만 이제 앞으로 더 기대가 되는 선수가 되었어요. 롱런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다보면 주목받을 수 있는 때가 오는 것 같습니다.”

옛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재완은 은퇴 이후에도 이름이 계속 알려지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내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다른 게임에서 활동을 활발하게 하셨던 분들도 은퇴 이후에 잊히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저는 계속 팬들 사이에서 숨쉬며 살아가고 싶어요. ‘울프’ 이재완이라는 이름을 꾸준히 알리기 위해 열심히 대외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글=임재형 기자 lisc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