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연기가 제일 재밌고 좋은 천우희는 ‘연기가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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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면서 의욕을 잃고 상처도 받았는데, 연기로 위로받고 치유했어요. 저는 연기가 체질인 것 같아요. 연기가 제일 좋고, 제일 재미있어요.”

배우 천우희(32)에게 2019년은 어떤 해로 기억에 남을까.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과 ‘버티고’(감독 전계수)가 개봉했고, 목소리 출연을 한 ‘메기’(감독 이옥섭), ‘마왕의 딸 이리샤’(감독 장형윤)도 관객과 인사를 나눴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감독 이병헌)에도 출연하며 2년 만에 안방에도 복귀했다.

천우희에게 2019년은 ‘다작의 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천우희는 연기 의욕을 다시 찾은 해다. 지난해 영화 ‘우상’을 촬영하면서 연기적으로 힘들었다고 고백한 천우희는 지금은 이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연기가 체질’이라고 이야기한다. 연기가 제일 좋고, 제일 재미있다는 천생 배우 천우희를 만났다.

[OSEN=지형준 기자] 영화 '버티고' 언론시사회가 11일 오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렸다.배우 천우희가 간담회를 하며 미소짓고 있다. /jpnews@osen.co.kr
올해 영화 ‘우상’과 드라마 ‘멜로가 체질’로 관객, 시청자와 만난 천우희가 영화 ‘버티고’로 돌아왔다.

‘버티고’는 아찔하게 높은 고층 빌딩이라는 장소와 그 안에서 위태롭게 하루하루 버티는 인물들, 그리고 유리창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또 한 사람의 시선을 통해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담은 영화다. 지난 12일 폐막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고, 지금의 청춘들에게 묵직한 울림과 메시지, 위로를 선사했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버티고’는 제가 감정선을 끌고 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제 연기만으로 작품을 전체적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영화를 본 뒤에도 스스로 만족해서도 안 되는 것 같고, 만족할 수도 없죠.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난 뒤 제 부족한 모습만 보였어요.”

천우희가 감정선을 끌고 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처럼 ‘버티고’는 천우희의 연기력에 많이 기댄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서영의 흔들리는 눈빛과 미세하게 떨리는 근육을 담는다. ‘극단적’이라는 표현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는 오히려 배우에게 부담일 수도 있다.

“클로즈업 샷을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아요. 클로즈업 샷을 하면 카메라가 가까이 있고, 스태프들도 가까이 있어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오히려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바로바로 교감할 수 있기도 하죠. 나쁘지 않아요. 잘 활용하면 캐릭터 표현을 담을 수 있어요.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관객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한다는 점이죠.”

천우희가 연기한 서영은 계약직 디자이너로, 사내 최고 인기남 이진수(유태오)와 비밀 사내 연애 중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불안정하다고 느끼고 있고, 회사에서도 재계약 시즌이 다가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현장에 나가는 것도 사회생활이죠. 관계들 속에서의 어려움, 녹록지 않은 것들을 꺼내려고 했고, 친구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일할 때, 출근할 때 등 하루의 루틴에 대해서 많이 들었고, 봤고, 간접적으로 많이 찾아보면서 캐릭터를 잡았죠.”

[OSEN=부산, 민경훈 기자]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버티고' 야외 무대인사가 진행됐다.무대 위에서 배우 천우희가 미소 지으며 입장하고 있다. /rumi@osen.co.kr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은 천우희가 올해 극과 극의 서른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버티고’의 ‘서른’ 서영은 안으로 숨기고 참는 타입이라면, ‘멜로가 체질’의 ‘서른’ 임진주는 숨기지 않고 밖으로 발산한다. 극과 극의 서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천우희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관심사다.

“‘멜로가 체질’은 요즘 들어 제게 가장 큰 계기라고 생각해요. 장르적으로 처음 도전했고, 드라마도 정말 오랜만에 했어요. 밝은 코미디 장르에 대한 욕심은 늘 있었고, 그런 캐릭터를 만나면 즐겁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욕심이 있었죠. 대본도 어느 정도 나와있는 상태여서 어려움 없이 즐겁게 촬영했어요. ‘멜로가 체질’ 이후에는 젊은 친구들뿐만 아니라 나이가 있으신 분들도 잘 봤다고 해주셨어요. 반응이 조금 더 넓어지고 커졌어요.”

그렇다면 ‘버티고’의 ‘서른’ 서영은 어땠을까. 회사 생활 등을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면서 캐릭터를 연구한 천우희는 너무 참고만 사는 서영이라는 캐릭터를 안타까워했다.

“참는 게 본인에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름의 배려였겠죠. ‘멜로가 체질’ 임진주와 비교하면 같은 상황에 놓여도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요. 어떤 방식이 좋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익숙하지 못한 것들을 융통성 있게 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서영도 그런 인물이 아닌가 싶어요. 안타까웠죠.”

‘멜로가 체질’ 임진주, ‘버티고’ 신서영. 모두 서른 살을 맞아 흔들리는 인물이다. 먼 옛날 공자는 ‘서른’을 두고 ‘이립(而立,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른은 세상을 다 안다고 하기에는 어리고, 그렇다고 모른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나이다.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는 만큼 흔들리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두 캐릭터처럼 천우희도 흔들렸던 적이 있다. 그 시기는 그리 멀지 않다. 바로 지난해다. 스스로 멘탈이 건강하다고 자부하고, 캐릭터를 자신의 삶에 잘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천우희지만 영화 ‘우상’에서 련화 역을 오래 연기하면서 긴장을 놓칠 수 없었고, 힘든 캐릭터를 오래 갖고 있다 보니 어려움이 따라왔다.

“7개월 이상 캐릭터를 갖고 있으니 쉽지 않았죠. 촬영 스케줄도 많이 바뀌면서 긴장을 놓칠 수 없었고, 그때 마침 제 부족한 면을 많이 보게 되면서 자격지심도 들었어요. 그런 부분이 겹치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자랐어요. 촬영을 마치고 번아웃 증후군처럼 의욕을 갖는 게 쉽지 않았어요. 연기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졌어요. 그래서 연기 외적인 것들로 환기 시키려고 했어요. 유튜브, 애니메이션 더빙 등이 그 일환이었죠.”

걱정스러운 부분이지만 천우희는 다행히 스스로 극복해냈고,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연기’였다. 연기에서 받은 상처를 연기로 치유한 셈이다. 영화 ‘우상’이 개봉한 가운데 ‘버티고’가 연이어 개봉하고, 드라마 ‘멜로가 체질’로 시청자와 만나면서 천우희는 의욕을 찾았다.

“‘우상’, ‘버티고’가 개봉하고 드라마 ‘멜로가 체질’도 했잖아요. 활동을 많이 하니까 힘을 받는 게 있었어요. 연기하면서 잃었던 의욕과 받았던 상처를 연기로 위로받고 치유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버티고’는 천우희가 의욕을 찾은 뒤 연기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천우희는 ‘버티고’를 통해 의욕을 찾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도 했지만 유난히 겁을 많이 냈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시나리오를 받고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로 출연을 결정했어요. 제게 하는 이야기 같아서요. 물론 상황은 다르지만 많이 지쳤던걸 조금이나마 알아주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면서 마음을 치유받았고 의욕을 찾았죠. ‘버티고’는 흥행, 완성도를 떠나 연기적인 의욕을 찾은 것만으로도 됐다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하지만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이고, 마음을 잡은 후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의심이 많이 들었어요. 제가 잘하고 있는 건가 싶었고, 혼란스러웠죠. 그래서 유난히 겁을 많이 낸 작품이에요.”

유튜브, 애니메이션 더빙 등 연기 외적인 것들로 환기를 시키고 의욕을 찾으려 노력했던 천우희지만 그에게 의욕을 다시 찾아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연기였다. 천우희는 스스로를 ‘연기가 체질’이라고 이야기했다.

“연기가 체질이에요. 다른 흥미가 없어요. 연기를 하면서 그 외의 재미있는 걸 찾았다면 균형감을 잘 맞췄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연기를 너무 좋아하고 제 인생에 큰 부분이 연기인 것 같아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아요. 연기가 제일 좋고, 제일 재미있어요.”

연기로 인해 의욕을 잃었고 상처를 받았지만, 연기로 위로를 받고 치유한 천우희는 앞으로도 다양한 더 많은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하며 관객, 시청자들에게 더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고자 한다. 특히 ‘멜로’에 대한 욕심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우상’ 팀을 최근에 만났는데, 한석규 선배님이 ‘멜로를 할 수 있을 때 많이 하면 좋다. 인간에게 가장 섬세한 부분을 표현하는 게 멜로다’라고 하셨어요. 진짜 그래요. 사랑이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하고, 희로애락을 잘 보여줄 수 있는데 왜 외면했을까 싶어요. ‘버티고’, ‘멜로가 체질’을 하면서 누구나 많이 공감할 수 있는 것들도 재밌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이제 작품을 선택할 때 제 취향도 있겠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등으로 조금은 바꿔보려고 해요.”

/글= 장우영 기자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