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3대 타짜’ 박정민, 평범함 속 특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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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2016)로 박정민은 영화계 안팎의 기대를 받는 배우가 됐다. 좋은 영화 시나리오를 먼저 받는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는 연기자가 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송몽규 캐릭터 하나만으로는 박정민의 넘치는 매력과 변신 가능성을 완벽하게 다 설명할 수 없다.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 2018) ‘변산’(감독 이준익, 2018) ‘사바하’(감독 장재현, 2019) 등의 영화에서 보여준 반전 캐릭터를 통해 배우로서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을 입증했다.

없는 매력도 노력으로 만들어낼 것 같은 그의 장점이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감독 권오광)에서 제대로 폭발했다.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 강형철 감독의 ‘타짜-신의 손’(2014)에 이어 시리즈의 명맥을 이은 ‘타짜: 원 아이드 잭’은 52장의 카드로 승부를 가르는 포커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담았다. 허영만 작가의 만화 ‘타짜’를 원작으로 하는데 도일출(박정민 분)과 그의 아버지 짝귀(주진모 분)의 관계는 살렸지만 영화의 중심이 되는 플롯을 대폭 수정했다. 메가폰을 잡은 권오광 감독이 시나리오 각색도 맡았다.

[OSEN=곽영래 기자] 28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대 롯데시네마에서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박정민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youngrae@osen.co.kr
지질했던 도일출이 점차 수컷의 향기를 내뿜으며 그때 그때의 상황에 걸맞게 다양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일출을 연기한 박정민의 현란한 스텝을 같이 밟다보면 전작과 원작의 정서는 어느새 희미해진다.

박정민은 ‘타짜’ 시리즈의 유명세가 부담스러워 한 차례 고사했지만 각본의 완성도와 메가폰을 잡은 권오광 감독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제가 출연을 확정하기 전에 지인들이 ‘하지 말라’고 했다. ‘네가 해서 괜히 욕 먹지 말아라’, ‘굳이 그 판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 사실 제게 별 관심이 없으면 알아서 하라고 했겠지만 저에 대한 애정이 담긴 조언이었다. ‘타짜’가 말이 많은 영화인데 자신들이 아끼는 배우가 뛰어드는 게 안쓰러웠나 보다.(웃음) 그러다 나중에는 제가 그들에게 해야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더라. ‘그럴 거면 왜 물어 보느냐’는 말도 들었다.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권오광 감독님을 믿고 했다.”

박정민은 이어 “감독님은 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유명한 분이었고 제가 (그의 전작)‘돌연변이’를 재미있게 봤다. (‘돌연변이’를 했던)이광수 형, 박보영에게 전화를 해서 감독님이 어떤 스타일인지 물어봤더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라”며 “그 모습을 보고 괜찮은 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현장에서는 더 반했다. ‘타짜’라는 이름 자체에 의지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담이 됐지만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좋았다”고 출연을 결정한 이유를 털어놨다.

박정민은 노량진 학원가를 채운 공시생에서 피비린내 나는 도박판에 인생을 내건 전설의 타짜로 탈바꿈했다.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 건데, 숨겨졌던 도발적인 눈빛과 미소를 꺼내 배우로서의 또 다른 도약과 비상을 알렸다.

“감독님이 배우에게 뭔가 해달라고 주문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과 둘이 콘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한 장면 한 장면을 훑어봤다. 대략 5~6시간 정도 걸렸다. 그날 장면마다 조명, 카메라 등을 어떻게 적용할지 얘기를 나눴다. 제가 시나리오를 읽으며 몰랐던 부분, 감독님이 각각의 장면에서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박정민의 변신을 실감한 부분은 외모였다. 도일출 캐릭터를 한층 빛나게 하기 위해 날렵한 브이라인과 깊어진 목소리를 보여줬다. 그는 “살 빼는 게 힘들긴 했다. 카드를 배우는 건 하다 보면 재미있어서 할 때마다 보람을 느꼈는데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막상 다이어트도 어렵진 않았지만. 제가 원래 밥을 잘 안 먹는다. 촬영 중에 식사량을 줄였고 촬영이 끝나면 숙소 한 바퀴를 걸었더니 살이 빠지더라. 빼면 뺄수록 화면 속 제 얼굴이 잘 나와서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박정민은 이어 “저는 완성된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감독님이 후반부에 모든 걸 다 갈아 넣으셨구나 싶었다”라고 만듦새에 대한 만족도를 드러내며 “저라는 사람은 정작 눈앞에 닥치면 (외부적인 요인에) 구애받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건 하는 사람이다. 전작의 무게가 부담이 됐지만 흥행한다고 해서 혹은 흥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배우로서 제 인생이 확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흥행, 숫자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그러면 불행해진다”는 생각을 밝혔다.

“작년 한 해 정말 최선을 다해서 찍은 영화인데 숫자 때문에 좋은 추억이 왜곡되는 게 싫다. 마음을 비우려고 한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11년 데뷔한 박정민은 사실 데뷔 9년차 경력을 가진 배우 같지가 않다. 신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겸손하고, 친근한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꾸며진 착함이나 정제된 차분함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가식없이, 수수하고 지나친 과장이 없다. 인터뷰할 때는 특히나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지만 어떤 때는 ‘이런 모습도 있었어?’라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글에서는 센스 넘치는 말본새를 자랑하는 박정민이다.

[OSEN=이대선 기자] 8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제작보고회가 열렸다.배우 박정민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sunday@osen.co.kr

이날 인터뷰에서 그가 가장 많이 말한 얘기는 “혼자 돋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재미있었다”였다. 글자로 보면 굉장히 상투적인 표현 같지만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듣고 있자면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번에 느낄 수 있다.

여담으로 대부분의 배우들이 타 작품 촬영 스케줄로 인해 시간이 부족하고, 며칠 동안 이어지는 인터뷰는 힘들다는 이유로 일대다 인터뷰를 하는데, 박정민 만큼은 다르다. 그는 “(왕 자리에 앉아)말 실수할까 무섭다”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선이 두렵다”면서 굳이 일대일 인터뷰를 고수한다. 이날도 기자에게 ‘도대체 왜 일대일을 하는 거냐’는 애정 섞인 놀림을 받았다.

영화를 촬영하는 6~7개월간 카드 연습을 하며 한순간도 허투로 보내지 않고 바지런하게 ‘타짜3’를 채운 박정민. 영화와 캐릭터를 향한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저는 그때그때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영화를 할 때는 같이 하는 사람들을 의지한다. 그런 면에서 ‘타짜3’는 의지할 게 많은 작품이었다.”

박정민은 스크린에 드러난 얼굴보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들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그가 갖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은 얼굴이 또 어떻게 생겼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남들보다 더 노력하는 과정에서 재능을 찾아가는 박정민은 결국 연기하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작품에서 가공된 표현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하는 그는 매 순간의 최대치를 끌어내고 있다. 아직은 성장 중이니 그의 인생 연기는 아직 안 나온 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글=김보라 기자 kbr813@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