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구가 국제무대서 25년 만에 농구월드컵 첫 승을 거뒀다. 분명 의미가 있는 값진 승리였지만 이대로는 안된다. 한국농구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농구협회차원에서 장기적인 계획수립과 실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25년 만의 농구월드컵 첫 승’
김상식 감독이 이끈 남자농구대표팀은 지난 9월 15일 막을 내린 ‘2019 세계농구월드컵’에서 1승 4패를 기록하며 32개 참가국 중 최종 26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코트디부아르와 마지막 순위결정전에서 80-71로 승리하며 25년 만에 월드컵 첫 승을 챙겼다. 한국은 아시아 최하위를 기록한 필리핀(5전 전패)을 FIBA랭킹에서 밀어내면서 내년 올림픽 최종예선 진출권까지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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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터가 없고, 장신포워드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그대로 약점으로 드러났다. 한국은 아르헨티나와 농구월드컵 조별리그서 69-95로 참패를 당했다. 한국보다 신장이 큰데다 개인기와 조직력, 슈팅까지 월등한 준우승팀 아르헨티나를 당할 재간이 없었다. 설상가상 국제무대 경험이 적은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얼어붙어 제 기량을 발휘해보지도 못했다.
심기일전한 한국은 러시아와 2차전서 전반까지 37-40으로 대등하게 싸웠다. 식스맨 이대성이 17점을 쏟아내며 분전했다. 하지만 후반전 러시아의 높이와 물량공세에 무너져 73-87로 아쉽게 졌다. 패했지만 최고참 양희종이 수비에서 진면목을 발휘하는 등 희망을 본 경기였다.
나이지리아와 3차전을 하루 앞두고 한국에서 비보가 전해졌다. SK의 정재홍이 심정지로 사망한 것. 정재홍과 동료였던 대표팀 주전 김선형, 최준용, 이승현의 충격이 컸다. 김상식 감독과 조상현 코치도 오리온 시절 정재홍을 가르쳤던 사제지간. 선수단 전체가 슬픔에 빠졌다. 1승 제물로 여겼던 나이지리아에게 개인기와 체격에서 현격하게 밀리며 42점차 완패를 당했다. 3패를 당한 한국은 순위결정전으로 밀려났다.
악재도 겹쳤다. 개최국 중국이 1승 2패의 저조한 성적으로 한국의 17~32위 결정전 첫 상대가 됐다. 최장신 김종규와 이대성은 부상으로 뛸 수 없는 상황. 한국은 중국 홈팬들의 일방적 야유를 딛고 접전을 펼쳤다. 하지만 결과는 73-77 아쉬운 패배였다. 에이스 이정현이 발목부상을 참고 뛰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물러설 곳이 없는 한국은 코트디부아르와 최종전에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5패로 한국에 돌아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충만했다. 결국 한국은 코트디부아르를 시종일관 몰아붙인 끝에 80-71로 이겼다. 1994년 캐나다 토론토 세계선수권 앙골라전 승리 후 무려 25년 만에 거둔 월드컵 첫 승이었다.
체격과 개인기의 절대열세…부상자까지 속출
한국농구는 세계농구와 현격한 격차를 확인했다. 키 크다고 센터를 시키는 한국의 ‘주입식 농구’로는 세계무대서 전혀 경쟁력이 없다. 210cm가 넘는 장신들이 화려한 드리블을 치고, 3점슛을 자유자재로 꽂는 시대다. 가뜩이나 체격이 작고, 개인기가 없는 한국선수들은 특기였던 슈팅마저 평범해지면서 ‘장기가 없는’ 밋밋한 농구를 하고 말았다.
그나마 1승을 거둔 것도 귀화선수 라건아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라건아는 평균 23점(1위), 12.8리바운드(1위), 평균 36.1분 출장(1위), 효율지수 36.1(1위), 더블더블 5회(1위)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라건아와 이승현은 매 경기 거의 풀타임을 소화하며 골밑을 사수했다. 장신포워드 자원을 더 선발해 활용하지 않은 김상식 감독의 용병술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
선수단 구성에도 문제가 많았다. 다른 국가들은 15~16명의 선수가 마지막까지 함께 훈련한 뒤 대회를 3일 남기고 최종 12명 명단을 확정했다. 하지만 한국은 개막을 한 달 남긴 시점에 일찌감치 최종 12명을 발표했다. 농구협회의 행정지원이 아쉬운 부분이다. 결국 최장신 김종규가 대회를 코앞에 두고 부상을 당했지만, 엔트리 교체는 없었다. 김종규는 월드컵에서 부상을 참고 출전을 감행했지만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국농구, 미래를 위한 청사진 절실하다
월드컵이 끝난 뒤 라건아는 “한국농구는 모든 것이 잘못됐다”며 폭탄발언을 했다. 국내선수들도 차마 말은 하지 못했지만, 라건아의 발언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언제까지 태극마크가 주는 애국심에만 기대어 선수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국가대표팀 위상에 어울리는 농구협회의 대대적 지원과 선진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한국농구의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일본은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과 농구협회의 장기계획이 맞물려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하치무라 루이, 와타나베 유타, 유다이 바바 등 NBA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일본에 농구붐이 불고 있다. 중국 상해에서 일본의 조별리그를 취재한 기자가 무려 106명이었다. 같은 기간 우한에 있던 한국기자는 8명이 전부였다.
일본농구협회는 ‘일본농구 백년대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일본출신 NBA선수를 키우겠다는 목표로 가동한 ‘미국 조기유학 프로그램’은 하치무라 루이의 성공으로 결실을 맺었다. 2020 도쿄올림픽 개최를 앞둔 일본은 소프트뱅크社가 농구협회에 무려 1천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대회를 앞두고 연습상대조차 구하기 어려운 한국농구 입장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리가 일본을 마냥 부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한국농구 역시 지금이라도 변해야 한다. 세계농구 흐름에 발맞춰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대표팀 경기력 향상은 물론이고 마케팅과 홍보에도 역량을 쏟아야 한다. 농구월드컵이 그저 한 번의 ‘소중한 경험’에 그친다면 한국농구는 앞으로 아시아에서도 변방에 그칠 수밖에 없다.
/글=서정환 기자 jasonseo34@osen.co.kr, 사진=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