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당구계는 그야말로 '심쿵'했다. 오랜 염원이던 프로당구 출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대감이 수직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후 'PBA 투어(Pro Billiards Association Tour)'라는 이름의 프로당구는 1000만명, 2만개가 넘는 당구 인프라를 가진 국내에서 빠지지 않는 스포츠 이슈가 됐다.
하지만 PBA투어의 등장에 당구계 전체가 환영일색이지만은 않다. 당장 아마추어 단체인 세계캐롬연맹(UMB)과 대한당구연맹(KBF)으로부터 지지를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선수수급 등 다양한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6월 3일 투어 개막전을 앞두고 있는 PBA투어와 이를 반기고 있지 않은 아마추어 스포츠 단체간의 갈등 이유는 무엇일까. 그 논란을 들여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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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탄생에 그 어떤 스포츠 종목도 피해 갈 수 없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선수를 사이에 둔 아마추어 단체와의 갈등이다. 제 아무리 훌륭한 프로 단체를 만들어도 선수가 없다면 존재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보유하고 있던 선수들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아마 단체로서는 감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이 때문에 프로 단체는 반드시 아마 측과 조율 단계를 거치는 것이 기본이다. 대부분의 프로 단체가 선수수급을 위해 ‘아마육성자금’ 등의 명목으로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거나 다양한 오픈대회를 만들어 프로와 아마가 공존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 종목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곧 프로를 살찌우는 길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PBA와 UMB-KBF의 갈등 양상은 원초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양측은 좀 다르다. 협의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다른 생각을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벌어질 대로 벌어져 있는 양측의 간극은 6월 개막전을 앞두고도 좁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상생협력 혹은 독자노선
무엇보다 PBA 측과 UMB-KBF 측의 주장은 진실공방 형태가 되고 있다. PBA 측은 '상생과 협력을 위해 제안한 내용을 KBF가 여러 이유를 들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KBF 측은 '구체적인 제안에 대한 합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KBF가 약속을 깬 것처럼 PBA가 언론플레이를 통해 호도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 PBA 측은 ‘PBA서 뛰는 선수들은 국내외 다른 어떤 대회에 참가해도 무방하다. 선수들의 대회 참가 자율권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포용의 모습을 보였다. 이에 KBF 측은 ‘PBA로 가는 것에 대한 징계는 없지만 다시 연맹의 전문 선수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3년이 경과해야 한다’고 대응했다.
상반된 주장은 당장 어느 쪽 손을 들어줄 수 없게 만든다. 시간이 걸려야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의 이동과 관련해서는 KBF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종목마다 다를 수 있지만 다수의 프로스포츠 관계자에 따르면 아마 종목 단체는 기본적으로 남아 있는 선수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프로 이적 3년 후 재입회할 수 있다는 규정은 틀리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그 부분에 대해 징계 운운하는 PBA 측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선수들도 자신이 원하는 단체를 고른 뒤 가서 활동하면 그만이다. 선택의 자유도 있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는 의미다.
결국은 흥행이 관건
프로당구의 성공 열쇠는 결국 흥행 여부에 달려 있다. 그래야 스폰서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여 대회를 이어갈 수 있다. 일단 PBA는 2019-2020시즌에만 1부투어 8번, 2부투어 10번 일정을 발표했다. 이 일정에는 여자프로 LPBA 대회도 8번 포함돼 있다. 내년 2월말 상위 32강만 출전하는 PBA파이널에는 우승상금 3억 원(총상금 4억 원)이 걸려 있다.
하지만 PBA 대회 일정은 달갑지 않은 부분이 있다. 독자적으로 대회 일정을 짜다보니 UMB 혹은 KBF 일정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하다. 선수들에게 어떤 대회도 출전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정작 선택의 폭은 크지 않다. 추후 양측이 극적인 합의를 이룬다 해도 조절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어떤 대회도 출전할 수 있다는 PBA의 주장은 생색내기처럼 들릴 수 있는 부분이다.
톱랭커 대부분을 확보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PBA는 우선 등록선수 50명, 트라이아웃 통과자 48명 등 총 120명의 선수들이 등록을 마치고 개막전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는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 강동궁을 비롯해 에디 레펜스(벨기에), 토니 칼슨(덴마크), 하비에르 팔라존(스페인),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그리스), 글렌 호프만(네덜란드), 김형곤, 서현민, 조건휘, 고상운, 홍진표, 오성욱 등이 포함됐다.
PBA는 상당히 많은 중위권 선수들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세계랭킹 1위 딕 야스퍼스(네덜란드)를 비롯해 토브욘 브롬달(스웨덴), 다니엘 산체스(스페인), 에디 멕스(벨기에), 조재호, 허정한, 최성원, 김행직 등 높은 인지도의 선수들을 끌어오는 데 실패했다. '프로'에 걸맞은 리그가 될 수 있을지, 일부 선수들의 독무대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긍정
PBA 등장은 선수들을 쪼개놓고 당구계 갈등을 더 부각시켰다. 스포츠보다 정치, 비즈니스적인 색채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도 달갑지 않다. 이 때문에 과연 PBA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보내는 시선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PBA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당구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심지어 UMB와 KBF마저 PBA가 잘 되길 바라고 있다. 실제 대회 상금을 인상하고 홍보면에서도 PBA를 벤치마킹하려는 등 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PBA가 부른 긍정효과다. 당구계가 얼마나 프로당구를 갈망했는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일단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어떻게 굴러가서 결과물을 내놓을지 지켜봐야 할 시기가 됐다. 과연 PBA가 프로다운 행보를 보여줄지 스포츠계 전체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강필주 기자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