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biz=강희수 기자] 일반적으로 전기차라 하면 어딘가 티가 난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답답한 디자인으로 막아 놓았거나 그릴의 흔적조차 없애버리는 경우도 있다. 내연기관과 다른 면을 강조하기 위해 미래지향적인 가니시를 붙이기도 하고, 여기 저기 전기차임을 표시하는 배지도 단다.
그런데 이런 차도 있다. 외관만 봐서는 전기차인지 내연기관 차인지 구별이 안 가는 그런 차 말이다. 제네시스가 최근 출시한 ‘G80 전동화 모델’이 그 경우다.
이 차가 순수 전기차임을 알기 위해서는 라디에이터 그릴로 가서 손가락으로 만져보는 게 가장 확실하다. 그냥 눈으로 봐서는 ‘내연기관 G80’과 구분이 쉽지 않다. 전기 충전구도 라디에이터 그릴 한 귀퉁이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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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기관 ‘G80’의 디자인을 훼손하기 싫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G80’의 디자인은 완성도가 매우 높다.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에서 매년 선정하는 ‘대한민국 올해의 차’에서 ‘2021년 올해의 차’로 선정되는데 혁혁한 공헌을 한 게 디자인이다. 제 아무리 내연기관을 들어내고 전기 모터를 넣었을 지언정 디자인의 완성도를 훼손하는 건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긍정적인 효과는 있었다. 내연기관 G80의 디자인에 매료된 사람들은 전기로 구동되는, 똑 같은 G80를 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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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부와 후면부에는 공력성능을 고려한 터빈(turbine) 형상의 신규 19인치 전용 휠과 범퍼를 각각 배치했다. 배기구를 없앤 후면부는 입체감을 부여해 세련된 이미지를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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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전용 플랫폼에서 탄생한 차들과 비교해 보자. 현대자동차의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5 2WD는 72.6kWh짜리 배터리를 달고 최대 주행거리를 429km로 인증 받았고, 출시를 앞둔 기아의 EV6의 롱레인지 후륜구동 모델은 77.4kWh의 배터리를 달고 475km를 인증받았다. 19인치 타이어를 낀 EV6 사륜구동 모델은 인증 주행가능 거리가 441km다.
배터리 용량과 사륜여부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동일 비교는 어렵지만 차체 크기를 감안하면 G80도 아이오닉5나 EV6 못지않은 에너지 효율을 확보했음을 알 수 있다. 미디어 시승에 동원된 ‘G80 전동화 모델’은 19인치 휠을 장착한 사륜구동 모델이었지만 시승행사에 참가한 대부분의 기자들은 공인 복합전비(4.3km/kWH)보다 높은 전비를 얻었다.
사륜구동은 전-후륜에 개별적으로 달려 있는 모터로 제어된다. 내연기관이라면 프로펠러 샤프트가 있어야 하지만 전기차 사륜구동은 전-후륜 모터의 구동력 조정으로 제어한다.
‘G80 전동화 모델’이 전-후륜 구동력을 조정하는 상황은 계기반에 중앙에서 시각적으로 표출된다. 에코 모드와 컴포트 모드에서는 후륜을 중심으로 구동력이 전달 되는 게 확인된다. 컴포트 모드일지라도 주행속도가 시속 120~130km에 이르면 사륜 모두에 구동력을 투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면 시작부터 사륜에 구동력이 전달된다.
스포츠 모드에서의 구동력은 내연기관 G80에서도 맛보기 힘들 정도로 즉각적이다. 전-후륜에는 각각 최대 출력 136kW, 최대 토크 350Nm을 내는 모터가 달려 있다. 앞뒤 모터가 다 가동돼 뽑아 내는 합산 최대 출력은 272kW(약 370PS), 최대 토크는 700Nm(71.4kgf·m)나 된다. 내연기관 G80 V6 3.5 가솔린 터보가 최대 출력 380마력, 최대 토크 54.0kgf·m다. 전동화 모델의 토크가 월등히 높기 때문에 그만큼의 구동력 차이가 난다.
이 정도 기동력이면 대형 세단이지만 제법 제로백을 따질 수준이 된다. 스포츠모드를 놓고 풀가속을 하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9초만에 도달한다.
결국 ‘G80 전동화 모델’은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을 한 번에 보유한 차가 된다. 모드 선택에 따라 고효율차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고출력 차량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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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전기차 플랫폼이 아니지만 그에 비근한 효율을 내는 비결은 차의 무게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 덕분이다. 제네시스는 G80 전동화 모델의 전-후륜에 각각 탑재되는 모터, 감속기, 인버터를 일체형으로 구성해 무게를 줄였다.
아울러 전륜에 모터와 구동축을 주행상황에 따라 분리하거나 연결할 수 있는 디스커넥터 구동 시스템(DAS, Disconnector Actuator System)을 탑재해 2WD와 AWD 사이를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불필요한 동력손실을 최소화하는데 효과가 있다.
전기차 전용 디자인의 그릴 및 휠, 전면 범퍼 하단부 휠 에어 커튼을 적용하고 차체 하부는 완전 평면형 (Full Flat Under Body)으로 설계해 가솔린 2.5 터보 모델 대비 공력성능을 개선했다.
동력성능이 뛰어나면 제동성능도 뒷받침이 돼야 한다. G80에 적용된 통합형 전동식 부스터(IEB)가 1인 3역을 했다. 단순히 제동력만 높여서는 안된다. 전기차는 회생 제동을 해야 한다. 정차를 위한 제동력과 회생 제동 사이에는 이질감이 없어야 한다. 전동식 부스터(IEB)는 둘 사이에서 최적의 제동감을 찾았다고 한다. 안정적인 제동력을 위해서는 전륜 콘티넨탈 모노블럭 캘리퍼(4P)와 후륜 대구경 브레이크 디스크가 기본으로 들어가 있다.
제네시스는 G80 전동화 모델에 경량 소재를 적용하고 부품의 개수를 최소화했다. 이를 통해 G80 내연기관 모델 대비 차체 강성을 17% 높였다. 충돌 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분산시켜주는 전방 구조물과 승객을 보호하는 서브 프레임을 갖춰 충돌 안전성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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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루프’로는 하루 평균 730Wh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1,150km(1일 평균 5.8시간 기준)를 주행할 수 있는 에너지가 모인다. 태양 아래 세워놓기만 해도 돈을 아끼는 셈이다. 시동을 끈 상태에서는 솔라루프를 통해 12V 배터리도 충전할 수 있어 방전의 위험도 낮출 수 있다.
i-PEDAL 모드도 재미 있다. 스티어링 뒤쪽에 있는, 패들시프트 모양의 i-PEDAL은 회생 제동력을 조절하는 장치다. 기어를 바꾸는 패들시프트 처럼 단계를 하나씩 낮추거나 높임에 따라 회생 제동력을 조절할 수 있다. 회생 제동의 저항력을 낮추면 고단 변속기처럼 가속에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회생 제동 저항력을 높이면 엔진 브레이크를 건 것 같은 감속 효과를 볼 수 있다. 저항을 최고 단계로 높이면 정차까지 가능하다. 브레이크 없이 가속 페달만으로 주행하는 ‘원 페달 방식’과 유사하지만 페달을 밟지 않고 관성주행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회생 제동 효과를 높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구실도 한다.
시승에서 이 기능을 써 보니 저절로 착한 운전자가 돼 있었다. 멀찍이 정지 신호가 나타나면 미리부터 속도를 줄이다가 정지선 앞에서 정차하는 과정까지 i-PEDAL로 조절할 수 있었는데, 밖에서 보면 급 감속이 없는 모범 운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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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교통 흐름과 운전자의 감속 패턴 및 내비게이션 정보를 활용해 회생 제동량을 자동 조절, 전비 향상을 돕는 ‘스마트 회생 시스템 2.0’도 G80 전동화 모델에는 들어가 있다.
실내는 무척이나 조용하다. 시끄러운 엔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숙성 확보를 위해 능동형 소음 제어 기술인 ANC-R(Active Noise Control-Road)을 기본으로 실었다. 4개의 센서와 6개의 마이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노면소음을 측정, 분석한 뒤 반대 위상의 소리를 스피커로 송출해 소음을 줄이는 첨단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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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실내는 내연기관 차에 비해 차 바닥이 10mm 높다. 배터리가 들어갈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아니기 때문에 트렁크 공간도 내연기관에 비해 많이 좁다. 배터리와 모터가 들어가는 공간으로 양보했다. 차 바닥이 10mm 높기 때문에 아주 예민한 사람들은 천장이 머리와 가깝다는 것을 미세하게 느끼기도 한다.
G80 전동화 모델의 판매 가격은 8,281만원이다. 이는 전기차 세제혜택 반영 및 개별소비세 3.5% 기준이며, 정부 및 지자체 보조금에 따라 실 구매가격은 더 낮아질 수 있다. /100c@osen.co.kr